- 뮤지컬 -
아침에 눈을 뜨니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요 몇일 과제하느라 밤을 새다시피 했더니 몸이 피폐하기 이를데없다.
주말에 한가할때 해도 상관없는 과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미리 해놨다.
혜진이랑 헤어진 뒤에 한참을 생각했다.
헤어져서 아플만큼 아프고 주위 사람들. 특히 친구들에게
민폐끼칠만큼 끼치고 - 물론 지금도 생각이야 하지만 - 나서야 한숨을 돌리고.
문득 거울속에 나를 보니. 아. 이젠 나도 좀 다독여보자 싶었다.
과제한다고 피폐한 생활이 계속되다보니.
힘들게. 정말 힘들게 뺏던 살들이 은근슬쩍 다시 붙어 있었다.
이 밉살스런 녀석들. 없어도 상관없는 녀석들인데.
왜 잠시만 한눈을 팔면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오는지... 이런 인기는 싫다. -_-
여튼 그러다가 문득. 문화생활을 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다름아닌 뮤지컬이였다.
보고 싶은 작품은 정해둔 것이 있었다. 요새 거의 밤을 함께하는 SBS라디오에.
지겹도록 나오는 광고. 지킬 앤 하이드였다.
혼자가긴 싫어서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해봤다.
여자친구 있을땐 이런 고민은 안해도 되는데 - 돈은 200%로 깨지지만 -
문득 같이 갈 사람 고르는 것도 것 참...
일단 남자친구 있는 사람 제외.
너무 친하거나 오히려 친하지 않은 사람 제외.
뮤지컬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을 것 같은 사람. 사람. 사람.
하다가 떠오른 것이 윤진이였다.
까칠하긴 하지만 미대생이니까 관심이 있을 것 같달까?!
그리고 이전에 내가 잘못한게 있어서 약간 서먹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관계 호전 겸사겸사. 윤진이에게 뮤지컬을 같이 가자고 했다.
여전히 까칠했지만 관심은 있었는지 수락.
...까지가 2주 쯤 전의 일이고. 그 뮤지컬이 드디어 오늘 인 것이였다.
그래. 주말에 놀기 위해 평일 내내 밤새면서 과제한거다!
미련한게 아니야. 계획적이라고 해줘... -_-
- 옛 연인의 동생 -
사실 좀 늦잠 잤기 때문에 지하철은 포기하고 버스타고 서울로 갔다.
한 3000원 차이나서 시간이 걸려도 지하철 타려고 했는데.
늦잠 잤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_-
만만하면 능글맞게 문자라도 보내겠지만.
위에 언급했듯이 죄진게 있어서 찔리는 마음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날아갔다.
아쉽게도 그래도 늦은지라.
약속시간은 10시 30분이였는데 시계를 보니 한 15분 늦을거 같았다.
아이구. 가면 또 제대로 한소리 듣겠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쉬려는 찰나 윤진이에게 문자가 왔다.
...20분 늦는단다. -ㅅ-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을 살랑살랑 장윤진을 보면서.
나도 지하철 타고 가고 있었지만 미리 도착한양 문자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내가 홍대에 도착하고 약 5분뒤에 윤진이가 도착했다.
잠시동안 살랑살랑 윤진이를 감상(?!)했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동생이라는 수식어 빼곤 별달리 특별한 사이는 아니다.
저 수식어도 남들이 보기엔 특이할지 몰라도 실제론 안 그렇다.
신기하게도 헤어진 직후
남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 당시의 나는 다시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
윤진이는 헤어진 줄 이미 알고 있었고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언니는 언니. 나는 나. 라고 선언했다.
뭐. 그렇다고 엄청 가깝거나 한 사이도 아니고.
그냥. 원래 애매한 사이였다.
근데 저 수식어 때문에 애매한건 아니였다.
간만에 만난 윤진이는. 음... 뭐. 꽤 예뻐졌다.
대부분의 아는 여자에겐 관대한 평가를 내리는건 제쳐두고라도.
그간 아토피로 피부 트러블이 많았는데 피부가 뽀얗게 깨끗해 졌더라.
이동네 물이 자기한테 맞는 것 같댄다.
여자는 피부가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걸 새삼스레 느꼈다. 오오.
짧게 홍익대를 소개받고 학교 뒤쪽에 갔다.
공연은 오후지만 오전에 온건 윤진이가 부탁한게 있어서다.
이제 자취하고 싶은데 방을 구해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좀 도와달라는 것이였다.
일부러 서울 가는건 힘들겠지만 어차피 오늘 만나기로 했었으니.
조금 일찍 가면 되겠다 싶어 승낙한 것이였다.
내심 걔네 부모님도. 언니도 있는데 내가 이러는 것도 웃기기도 했지만. ㄱ-
방을 계약하는건 아니였으니깐.
여기저기 방 구경하면서 시세도 좀 알아보고. 옵션이나 세부사항도 물어보곤 했다.
몇군데 보고 나면 나중엔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 뭐.
방을 대충 구경하고나서 밥을 먹었다.
도와준 답례라고 - 근데 나 진짜 한 것도 없는데..; - 밥 사주더라.
그리고 같이 뮤지컬 보러 갔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
...생각해보니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라는 건 알겠는데.
난 원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아는거라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수록된 제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노래 뿐이다.
개략적으로 이중인격. 선과 악 사이에서의 고뇌. 정도만 알지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뮤지컬 가기 전에 원작을 읽어둘까 고민도 해 봤었지만.
사실 바빠서 할 여유가 없기도 했고. 요약본은 읽기 싫어서 방치한 것이였다.
절대. 까먹어서가 아니다.
3층에 제일 싼 표를 구했지만 좌석 배치가 참 잘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사각이 없는 훌륭한 배치구조였다.
3층인데도 불구하고 무대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배우들도 크게 보이고...
원래 4만원이였던 표 값도 학생 할인으로 2.8만원으로 끊고...
무엇보다 첫 뮤지컬이였던지라. 떨리는 마음으로 감상을 시작했다.
끝난 뒤의 느낌이라면. 감동. 와. 콘서트때도 느낀거지만. 공연. 콘서트.
진짜 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TV나 컴퓨터로 보는 매체랑은 진짜 감동이 달랐던 것 같다.
아무리 컴퓨터 환경이 좋아도 - 5.1채널이 어쩌고 해도 - 실제로 보는 감동만 못하다.
...라는걸 새삼 느꼈다.
난 지방도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주의지만.
확실히 문화생활은 서울이 좋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젠장. 지방에도 이런게 많이 전해졌음 좋겠어.
난 아직도 서울이 싫단 말이다.
말이 마구마구 샜는데. 여튼. 공연은 진짜 감동 그 자체였다.
관련 상품도 지름신이 내려서 윤진이랑 공연 끝나자마자 판매하는 곳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O.S.T나 화보는 2006년 것 뿐이였다.
모르긴 몰라도 2006년 당시 조승우가 지킬 박사를 연기해서 유명했나보다.
내가 보고 듣고 싶은건 올해 꺼라구... 싶어서 지름신은 결국 갈길을 못 찾고 안드로메다로 갔다.
윤진이랑 홍대로 돌아오는 길에 실컷 떠들어댔다.
아. 이 감동이란.
윤진이 돌려보내고나니 어느덧 저녁 7시.
다음 일정을 실행하겠습니다.
아. 윤진이랑 웃고 떠들다보니 어쩔수 없이 혜진이 이야기가 툭툭 나오더라.
예전만큼 가슴이 철렁이지도 않았지만 조금 그립기도 했다.
어차피 혜진이를 사이에 두고 알게 된 사이니 혜진이 이야기가 안 나올수도 없지 뭐.
윤진이는 "언니랑 헤어지니 더 편해서 좋다"라고 했는데.
확실히 나도 윤진이 대하는건 좀 편해졌지만.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녀석. 과제하고 있거나. 데이트하고 있거나. 자고 있겠지.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