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워하는 사람과 미움받는 사람 -
이 얼마나 시원한 한마디란 말인가.
이렇게 직접적이고 스트레이트한 말은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것 같다.
보통은 상대방에게 쌓인 울분을 터트리는 사람이 시원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듣는 내가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지난 주말. 괜히 지쳐있었다.
별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남들은 화이트데이니 뭐니 했지만.
그다지 관심사가 아니였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땐 눈앞에 닥친 졸업작품, 레포트 등 때문에 정말 바빴다.
물론 잠깐이나마 작년 화이트 데이를 떠올리고
씁쓸하게 웃긴 했지만 그게 축 처지게 할 정도는 아니였다.
혜진이는 이제 그냥 내 과거에 박힌 화석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꼬맹이라는 호칭보다 그냥 혜진이라고 하려고 노력중이다)
어쨋거나. 지금 일기에서 언급되는 주체는.
혜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얼마전까지 내 연인이였던 사람. 내 멋대로의 행동에 휘둘린 사람.
정말 미안해해야 하는데 사실 그다지 미안하지는 않은 사람.
나한테 참 잘해준 사람. 그런데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밀쳐낸 사람.
물론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내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모두 내 변덕이며. 내 이기심이였다.
그래서 변명하고 싶지도 않고. 솔직히 변명할 말도 없다.
그래서 참 한마디라도 욕을 먹고 싶었다.
이것마저도 사실 치사하기 이를데 없는 자기 만족이다.
그리고 결국 한소리 들었다.
개에에에쉐엑히 망할놈 고자나 돼서 디져랏!
늘 그렇듯 미끄럽게 혀를 굴리며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재수없게. 정말 내가봐도 재수없기 빙글빙글 웃으며 대꾸했다.
아아. 나는 정말 최악의 인간이야.
뒤늦게 조금이나마 그 사람이 날 정말 좋아해줬구나. 잘 해줬구나. 라는 걸
느꼈음에도 그 사람에게는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씁쓸히 웃고 말았다.
그러면 뭐해. 결국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는걸.
난 이용해 먹었을 뿐이다.
싫지는 않았고 호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죽을만큼 사랑하지도 않았다.
이제와서 꿈같은 사랑 찾는 것도 웃기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너무 좋아해주는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 또 핑계댄다. 이러면 안된다.
그래. 결론은 나는 그 아이를 이용해 먹고 냅다 버렸다.
좋은 결론이야.
어쨋거나 나는 깨끗하게 미움받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멋진 주둥이 덕분에 간만에 시원하게 한소리 들었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냥 그 뿐이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주 먼 시간이 지나면. 조그맣게 변명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상대방에게 나란 존재가 아주 깨끗이 희석됐음 좋겠다.
아아. 잠온다.
남들은 봄이니 뭐니 상큼한 일 투성인데 난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