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루치기와 식욕 -
도서관에서 집에 오니 식탁에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어머니가 쓰신 그 메모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남겨진 메모였다.
프라이팬에 돼지 두루치기 있으니 먹으라는...
...뭐 어때. 요즘 조금 빠지긴 했잖아?
...뭐 어때. 지금 엄마도 안 계시잖아?
...뭐 어때. 지금 아빠도 안 계시잖아?
나 먹으라는 건 아니였지만 저녘을 굶었기에.
두루치기의 존재는 굉장히 매력적이였다(게다가 집에 아무도 없었..).
고작 고기 한두조각 가지고
미친듯이 고민해야하는 나의 비루한 몸매에
순간 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이미 나의 손은 고기를 입에 운반한 뒤였다.
오물오물. 맛있었다. 'ㅅ'
- 아버지와 소주 일잔 -
요즘 도서관 다니면서 틈틈히 추리소설을 챙겨보고 있다.
소설속의 사건은 늘 사소한 문제를 동반해 주인공에게 간파되곤 한다.
하지만 난 다르다.
난 완벽히 고기를 먹었다. 먹은티가 나지 않게 뒤섞는 치밀함까지 선보였다.
흔적은 깨끗이 닦았다. 조사하더라도 나의 흔적은 없을 터.
그런데... 그런데.
그는 현장을 휘 둘러보더니 나지막히 읊었다.
"원균아 소주 한잔하자"
대부분의 아들들이 그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아버지가 편하진 않다.
영화같은데서 보면 부자가 캐치볼 하며 뛰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어렸을 땐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캐치볼 따위 즐길 수 있을 리 없다.
여러가지 의미로.
아버지께서는 엄마가 없을 때 둘이서 한잔하자고 하셨고.
나도 거절하지 않고 아버지 앞에 마주앉았다.
아버지께서는 내 근황. 준호 민석이의 근황을 간략히 물으셨다. 깊게 묻진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늘 주눅들어 있는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좀 주눅이 들고. 조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백수 입장에서 어깨에 힘 뻣뻣한 것도 나름 문제라면 문제)
그리고 아버지는 그 원인을 내가 초등학교때 읽었던 "퇴마록"이라고 지적하셨다.
퇴마록은 일종의 액션이라던가, 무협 소설에 가깝지만 조금 어눌한 소설이다.
확실히 어렸을 때 나는 퇴마록에 몰두하긴 했었다.
아버지께서 이 이야기를 하셨을 때 사실 나는 크게 공감을 하진 못했다.
퇴마록이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설마. 라는 감상.
그것보다는 아버지께선 세세한 일엔 관여하지 않는 주의이셨기 때문에 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읽었던 책이나 자잘한 사건을 기억하시는게 오히려 놀라웠다.
소주는 조금 썼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으면서도 복잡했다.
좋은 결과가 긍정적 마인드를 가져온다고 했었던가? 근데 그거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