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다 쓰러져가는 보금자리 ~스물라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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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바랜 명절 -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다.

이젠 어렸을 때처럼 설레지도 않고. 세뱃돈도 없고. 명절에 윷놀이도 없다.

연휴가 길다. 짧다하는 말이 있었지만 백수인 나랑은 크게 관계없고...

어째 요즘은 모든 일에 별 감흥이 없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비단 내가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게 아니라, 세상 자체가 작은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달까?

어쨋거나 연휴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우리가족은 명절에 큰 집에 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명절에 오는 식구들이 크게 줄었지만.

우리집은 별다른 변화없이 그대로 할머니 댁에 다녀오고 있다.

물론 예전만큼 새벽부터 바리바리 가지는 않지만 말이다.




할머니 댁에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역시 다른 큰아버지들은 오시지 않았고, 별달리 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반겨준 것은 큰아버지와 큰형네 가족.

간만에 본 형수님은 별로 바뀐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서이는 볼 때마다 부쩍부쩍 큰다.

하긴. 저 나이때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지.

근데 소영이 땐 괜찮았는데 서이는 낯을 심하게 가려서일까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다.

괜히 섭섭하구나. 조카야. ㅠ_ㅜ




어머니는 늘 하시던대로 제사음식을 준비하시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다른 식구들은 눈에 띄게 오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요 몇년간은 어머니께서 제사음식을 도맡아 하셨다.

형수님은 서이 본다고 바쁘셨기 때문에 별달리 음식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이제 어머니께서도 어느정도 나이가 있으시다보니

몸도 무거우셔서 일하시는게 힘들어보인다.

예전보다 간소하다고 해도 제사음식 준비하는 것도 큰 일이니까.

게다가 어머니마저 하지 않으시면 제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니 어쩔 도리도 없다.

그래도 집에서는 아버지께 불평불만해도 큰집에서는 군말않고 일하시는 것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뜬금없지만 아버지는 참 장가를 잘 가셨고...(웃음)




어머니가 안쓰러우셨는지 아버지께서도 같이 제사음식을 만드셨고.

나랑 상록이는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냥 옆에서 구경하고 얻어먹고 했다.

이런 것도 나름대로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나름대로 좋을 수도 있지만 결국 가족 휴가나 다를바 없는 느낌이라 씁쓸헀다.



난 친척들끼리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우리 친척들은 나이또래도 비슷해서 모여서 놀면 참 재밌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군대가기 전까지는 명절엔 늘 바글바글했고.

그렇게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시는게 참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한집, 두집씩 오는게 뜸해졌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는 이렇다.

명절이 명절같지가 않다.

할머니댁은 넓지도, 좁지도 않지만 달랑 두식구(큰아버지네와 우리가족)만 있기엔 크다.

덕분에 집에 넓어보였고, 휑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이날은 저녁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한 것이라곤 밤 늦게 상록이랑 PC방에서 시간을 때운 정도...



괜시리 몰려오는 이유없는 실망감이란.

특히 은영이 누나는 곧 결혼이기 때문에 맘 놓고 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그래도 올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태어나서 최악의 명절이였다. 이번 설날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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