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태몽은 큰 고모께서 꾸셨는데. 상당히 좋은 태몽이었다고 한다.
하얗고 빛나는 학이 하늘을 누비면서 날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빛나는 꿈이었던가?
하여간 대충 그런 내용의 꿈이었다.
아버지의 큰누나께서 그렇다고 하는데.
고작 23살인 새색시가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또 내가 5살 때였나? 어떤 스님이 길을 걷다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를 보고는. 서둘러 엄마를 찾아서.
"이 애는 크게 될 테니, 잘 기르시오" 라고 했단다.
태몽 좋다고 하지, 지나가던 스님이 크게 될 애라고 하지.
애 예쁘게 생겼지 - 내 입으로 말하니 민망하지만 어렸을 땐 되게 예쁘게 생겼다 -
등의 이유가 겹치니 왠지 신빙성도 있어 보이는 이야기들 덕에
젊은 새색시 코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유.
덕분에 어렸을 땐 정말 옥이야 금이야 자랐다.
하지만 생활이 어디 사람 마음처럼 되나.
결혼 초기에는 정말 집이 가난해서. 우리 집은 정말 자주 이사를 다녔다.
참고로 말하는데. 지금 죽 쓰고 있는 이야기들은 물론 나는
기억도 안 나고 잘 모르는 이야기다.
전부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들인 것을 미리 밝혀둔다.
여하튼, 싼값에 집을 사서 조금 더 비싸게 파는 식으로 자주 이사를 다녀서
재산을 조금씩 늘려갔던 우리 가정이지만.
로또도 아닌 이상 갑자기 생활이 바뀔 리는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난 어렸을 때는 그다지 분유를 먹지 못하고 자랐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몸이 약하셔서 모유는 어려웠고. 가난해서 분유도 어려웠었다고 한다.
뭐.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뭐 이것저것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
일단 어린 나이에 굶어죽지는 않았으니, 그때야 뭘 먹었던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결국 굶어죽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위에 언급했듯이 너무 옥이야 금이야 자라서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것을
굉장히 못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가난이야 어쨌건 간에 남부럽지 않은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났다.
...고 회상을 하지만. 실제로 나는 어릴 때는 굉장히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한다.
툭 하면 이빨이 아프거나 팔이 빠지거나 그랬단다.
그래서 명절 때는 꼭 밤에 이빨이 아프다고 울어서 온 가족을 다 깨우곤 했었다는.
그런 형들과 큰어머니의 이야기를 요즘도 종종 듣곤 한다.
이에 관련된 일화로, 내가 5살 때 즈음의 일이다.
할아버지께서 암으로 굉장히 위독하셔서, 온 식구가
할머니 댁에 모여서 긴장된 표정으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철없는 애들이야 안방에 모두 모여서 TV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하고 있었고 말이다.
밤이 깊어가고 있을 무렵, 큰아버지께서 할아버지의 임종을 알리셨고,
안 방에 있던 깨어있던 - 천균이형이나 인균이 형, 은경이 누나 등 -
아이들은 그 이야길 듣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었단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곤히 자고 있던 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막 울더란다.
그것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서럽게 말이다.
그렇게 온 가족이 통곡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울어서 막 숨이 막혀 하고 있기에,
내게 물을 먹이면서 큰어머니께서 왜 우냐고 물었더니, 내가 말하길,
이빨이 아파서 울었노라고 했단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라고 소리 치면 사실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만큼 나는 이빨 등이 아파서
자주 울어서 민폐 끼치던 어린이 이기도 했었던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나는 이사를 제법 많이 다니면서 살았는데.
사실 기억은 5살 때 살던 칠성주택에서부터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머릿속 기억이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
드디어 A4 2장 분의 프롤로그(웃음)이 끝났다.
웹에 연재 - 라고 하기엔 좀 억지가 있지만 - 하는 터라
굉장히 분량이 많아 보이지만,
책으로 치면 이제 겨우 한 장 읽은 거다(웃음).
하여간, 다음 이야기 부터는. 또 내킬 때 쓰도록 하고.
다음 이 시간에 계속.
하얗고 빛나는 학이 하늘을 누비면서 날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빛나는 꿈이었던가?
하여간 대충 그런 내용의 꿈이었다.
아버지의 큰누나께서 그렇다고 하는데.
고작 23살인 새색시가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또 내가 5살 때였나? 어떤 스님이 길을 걷다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를 보고는. 서둘러 엄마를 찾아서.
"이 애는 크게 될 테니, 잘 기르시오" 라고 했단다.
태몽 좋다고 하지, 지나가던 스님이 크게 될 애라고 하지.
애 예쁘게 생겼지 - 내 입으로 말하니 민망하지만 어렸을 땐 되게 예쁘게 생겼다 -
등의 이유가 겹치니 왠지 신빙성도 있어 보이는 이야기들 덕에
젊은 새색시 코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유.
덕분에 어렸을 땐 정말 옥이야 금이야 자랐다.
하지만 생활이 어디 사람 마음처럼 되나.
결혼 초기에는 정말 집이 가난해서. 우리 집은 정말 자주 이사를 다녔다.
참고로 말하는데. 지금 죽 쓰고 있는 이야기들은 물론 나는
기억도 안 나고 잘 모르는 이야기다.
전부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들인 것을 미리 밝혀둔다.
여하튼, 싼값에 집을 사서 조금 더 비싸게 파는 식으로 자주 이사를 다녀서
재산을 조금씩 늘려갔던 우리 가정이지만.
로또도 아닌 이상 갑자기 생활이 바뀔 리는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난 어렸을 때는 그다지 분유를 먹지 못하고 자랐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몸이 약하셔서 모유는 어려웠고. 가난해서 분유도 어려웠었다고 한다.
뭐.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뭐 이것저것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
일단 어린 나이에 굶어죽지는 않았으니, 그때야 뭘 먹었던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결국 굶어죽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위에 언급했듯이 너무 옥이야 금이야 자라서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것을
굉장히 못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가난이야 어쨌건 간에 남부럽지 않은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났다.
...고 회상을 하지만. 실제로 나는 어릴 때는 굉장히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한다.
툭 하면 이빨이 아프거나 팔이 빠지거나 그랬단다.
그래서 명절 때는 꼭 밤에 이빨이 아프다고 울어서 온 가족을 다 깨우곤 했었다는.
그런 형들과 큰어머니의 이야기를 요즘도 종종 듣곤 한다.
이에 관련된 일화로, 내가 5살 때 즈음의 일이다.
할아버지께서 암으로 굉장히 위독하셔서, 온 식구가
할머니 댁에 모여서 긴장된 표정으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철없는 애들이야 안방에 모두 모여서 TV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하고 있었고 말이다.
밤이 깊어가고 있을 무렵, 큰아버지께서 할아버지의 임종을 알리셨고,
안 방에 있던 깨어있던 - 천균이형이나 인균이 형, 은경이 누나 등 -
아이들은 그 이야길 듣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었단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곤히 자고 있던 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막 울더란다.
그것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서럽게 말이다.
그렇게 온 가족이 통곡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울어서 막 숨이 막혀 하고 있기에,
내게 물을 먹이면서 큰어머니께서 왜 우냐고 물었더니, 내가 말하길,
이빨이 아파서 울었노라고 했단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라고 소리 치면 사실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만큼 나는 이빨 등이 아파서
자주 울어서 민폐 끼치던 어린이 이기도 했었던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나는 이사를 제법 많이 다니면서 살았는데.
사실 기억은 5살 때 살던 칠성주택에서부터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머릿속 기억이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
드디어 A4 2장 분의 프롤로그(웃음)이 끝났다.
웹에 연재 - 라고 하기엔 좀 억지가 있지만 - 하는 터라
굉장히 분량이 많아 보이지만,
책으로 치면 이제 겨우 한 장 읽은 거다(웃음).
하여간, 다음 이야기 부터는. 또 내킬 때 쓰도록 하고.
다음 이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