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에 가다 -
저녁 느지막히 구미에 도착했다.
집에 연락했더니. 부모님은 두분다 안계시고 상록이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출장가셨고. 어머니는 계모임에 가셨다고 한다.
어차피 집에 혼자 있을거면 밖에서 잠깐 놀자고 상록이에게 말했다.
상록이도 알겠노라고 했고 기차가 구미역에 도착. 시간맞춰나온 상록이와 만났다.
그리 오랫만에 보는 것도 아니지만 생소했다.
어머니는 상록이가 할말 다 한다고. 알기 쉽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자주 못봐서 그런가 이녀석 얼굴 보고는 무슨 생각하는지 짐작도 안된다.
죽을 상이면 수능 망쳤는가 싶었을텐데. 얼굴만 보고는 모르겠더라.
저녁을 안 먹어서 근처 김밥집에 갔다.
떡볶이랑 김밥, 튀김을 시켜서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우선 첫번째로 상록이 수능 이야기.
이래저래 성적표 나오고 원서 쓸 때 되면 또 머리가 터져나갈텐데.
벌써부터 설레발 칠 이유도 없고 해서 듣기만 했다.
기운내라. 노력은 나중에라도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리고 두번째.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
다름아니라 어머니가 홈페이지에 일기를 보셨다는 것 같았다.
흐음...
- 공개된 일기 -
초등학교때. 아니 나는 국민학교 다닐 무렵에는 물론 일기를 썼다.
그런데 회상해보면 마지못해 쓴게 태반이였고.
방학때 일기는 다들 그렇듯 미뤄쓰느라 개학할때 바빴다.
반 습관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건 고등학교 1학년때.
당시 작문 과목의 수행평가가 일기였다. 별 생각없이 쓰기 시작했는데.
일기장이 한권한권 쌓여가는 재미에 습관적으로 쓰게됐다.
그렇게 졸업할 때 즈음엔 10권이 조금 넘는 일기장을 볼 수 있었다.
하나하나 묶다보니 거의 사전 수준이였다.
지금은 없다. 언제 어떻게 처분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 좀 귀찮아졌다.
그래서 고2때 수행평가(내 취미는 수행평가에서 시작된게 많구나)로 시작하게된.
홈페이지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웹 보드를 지원하는 업체가 많아서 그쪽을 이용했다.
슈퍼보드. 블루웹. 우뜨보드...
거의 1년 단위로 게시판을 갈아치웠던 것 같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이 홈페이지.
스물라인을 만들면서부터 이른바 돈을 내고 홈페이지를 유지하면서는.
그래도 이런저런 자료를 유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기는 2004년부터다.
꼬박꼬박 쓰던 시절도 있고. 등한시하던 시절도 있고...
이래저래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아직은 그래도 일기를 쓰고 있다.
당장 내년에도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있다.
홈페이지 자체는 오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오픈 홈페이지이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그다지 숨기지 않고 쓴다.
그렇게 몇년동안 이어져왔고. 오늘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순간 기분이 미묘했다.
- 어머니가 일기를 보셨다 -
어차피 공개된 일기인데. 어머니가 보셨다고 문제될 건 없었다.
마땅히 숨길만한 일도 없고. 숨길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집에가서 잔소리 들을 생각을 하니 문득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뭐... 결과적으로는. 보셨던 안 보셨던.
내게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일기를 보고 말한다"라는 애매한 것 때문일지.
내가 어느정도 나이를 먹어서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짜증내면서 집에 왔지만 의외로 어머니는 별말 하지 않으셨다.
상록이와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잤다.
실컷 일기이야기 쓰다가 뜬금없지만.
상록이가 머리가 복잡한거 같아서 괜히 마음이 안 쓰러웠다.
힘내라.
- 뿌린대로 거둔다 -
있었던 일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내가 누군가를 할퀴면 결국 그대로 돌아온다는걸 느꼈다.
열심히 착하게 살 지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