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피곤하다.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학원 방학 이틀째... 월요일에 의지를 불태우며 수업에 참가했고.
이러니 저러니 어쩌니 해도 대구와 경산을 오가며 수업을 듣고 있지만.
아쉽게도 계획만큼 잘 짜여진 생활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등록하자마자 방학하는 센스는 뭐람. 뭐 별 수 없지만...
어쨋거나 나의 의욕적인 계획적인 삶을 방해하는 요인.
첫번째로 아침마다 왠지 모르지만 찾아오는 공사 아저씨를 들어야겠다.
얼마전에 천장에 물이 차서 큰 난리를 겪었다.
그 전부터 냉장고에 물이 새고 있었고
그것 때문인지 아닌지 이제는 밝혀낼 수 없지만 그 즈음
천장에 곰팡이가 생겼기 때문에 나랑 민석이는 나름 긴장하고 있었다.
어쨋거나 더 미룰 수 없어 주인 아주머니께 말씀 드렸는데.
결과적으로는 윗집에서의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고로 천장이 마르면 공사하기로 한 것.
그 이후 민석이는 구미에 올라갔고.
혼자 의기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아저씨는 거의 매일 오셨다.
내가 보기엔 뭘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최소 한시간은
뭔가 둘러보고 가신다. 문제는 오시는 시간이 불규칙 한데다가.
온다고 말하고 오는 것도 아닌지라.
결국 아침에 기다리는게 일과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수리는 미루고 미뤄져 아직 제자리..
휑한 천장 자체는 크게 불만이 없지만 - 언젠가는 고칠테니 -
문제는 식생활이 꽤 불편하다는 것 정도다.
물론 돈이 없어서 이번주는 화요일에 구입한 너구리 멀티팩 하나로 버티고 있고.
처음에는 맛있던 너구리도 이제는 토할거 같지만.
그래도 굶지는 않는게 어디야. 문제는 설겆이하기 너무 불편하다.
외부인이 오니 설겆이는 해놔야 하고.
마땅히 둘 곳이 없어서 아저씨가 왔다 가시면 왠지 더럽고.
비닐 다시 붙이는 것도 귀찮고...
어쨋거나 금요일이다.
처음에 혜진이가 오는 날을 정했을 때는
학원 수업 땡땡이 치는게 내심 걸렸는데 마침 방학이다.
절대 여자친구 온다고 설레는 건 아니였음에도.
왠지 모르게 잠을 잘 못 자서 새벽 5시에나 잠들었다.
그리고 8시가 좀 지나서 공사 아저씨가 왔다 가셨던 지라.
결국 제대로 못 잤다.
혜진이가 탄 비행기는 2시가 좀 넘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였다.
그래서 입국 수속하고 짐 찾고 하면 대략 3시라고 예상한 나는.
혜진이한테 3시 40분에 인천에서 경산으로 오는
버스를 권했고 혜진이도 알겠노라 했다.
이게 어제 상의한 내용인데 막상 전화는 4시가 넘어서 왔다.
입국 수속하고 짐 찾는데 좀 오래 걸렸다나.
그래서 5시에 동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낮잠을 못자는게 그리 불편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종일 피곤하게 멍- 하니 있다가 혜진이를 데리러 갔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꼬맹이도 기내식 이후로는 못 먹었을테니.
만나서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참았다.
내심 동대구까지 나가는 건 귀찮음 300% 였지만 뭐...
귀찮아도 별 수 있나. 그정도는 감수해야지.
월급은 오늘 받았지만 이번달 휴대폰비도 못냈는데. ㅠ.ㅜ
별 수 없이 데이트비용으로 환원.
이번달 생활도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젠장.
이것 때문에 이번주 내내 라면으로 때운 것도 왠지 서럽다.
만나면 단단히 갈궈주리라.
그리 생각하면서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확실히 교통카드 만드니까 편하긴 편하다.
환승도 자유로운 편이고...
혜진이가 21시 쯤에 도착할거라고 해서 좀 여유있게 갔다.
문제는 동대구 근처에 터미널이 제법되서.
고속버스 터미널. 시외버스 터미널.
한진택배 - 왠지는 모르지만 버스가 있다 - 중앙고속등 이것저것 있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결국 인천공항발 버스는 중앙고속에 선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터미널에서 기다리...려고 했지만. 터미널이 문을 닫아서.
그냥 길에서 서성였다.
그리고 21시 20분. 인천공항발 버스가 왔지만.
혜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16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랜다.
혜진이는 17시 출발이랬으니 40분은 있다 오겠구나...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생각에 놀랐다.
사실 기다리는게 길어져서 짜증은 꽤 났지만.
날도 더운데 밖에서 기다리니까 말이야.
그래도 비행기 타고. 공항에서 5시간씩 버스타고 오는 사람도 있겠다.
라는 생각에 애써 忍. 忍. 忍.
그리고 22시에 드디어 혜진이가 왔다.
전에 내가 호주다녀왔을 때도 그랬는데 이녀석 왜 이리 날 어색해하나.
네이트에서는 만나면 길거리에서 안아달라느니
만나면 뽀뽀를 해달라거니 어쩌니 하더니.
막상 만나니까 정작 낯가리는거 보고 피식 웃었다.
아니. 한편으로는 오랫만에 만난 남자친구가 코끼리가 되서 실망한 것일라나.
그리고 예상대로 혜진이의 첫번째 요청은 다름아닌 밥. 이였다.
하긴. 배가 안 고프면 이상하지.
시간도 시간인지라 일단 근처에서 김밥을 사먹었다.
사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역시나 뭔가 미묘하게 어색했지만 그려려니 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나서는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하기로 했다.
귀국 전에 어느정도 상의하긴 했지만.
사실 계획이란게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과 더불어.
생각보다 늦게 왔으니 뭔가 변경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쨋거나 잠깐 고민한 다음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인 사월까지 왔다.
동대구에서 시지면 가깝고도 먼 거린데 지하철 타면 대략 30분 걸린다.
여튼 사월역에서 내린 우리는 역에서 5분 거리의 이마트에 갔다.
당초 계획은 마트에서 느긋히 구경하면서 시간좀 보내는 것이였지만...
뭐. 우리가 마트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0분이였으니까.
공식적으로는 12시에 문 닫기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니며 수많은 떨이들을 샀다.
그리하여 산 것은 1개 4500원인데 떨이로 2000원에 파는걸
흥정해 2개 3500원에 산 튀김. 14500원인데 7800원으로 산 훈제오리 고기.
5400원인데 3500원에 흥정한 연어 초밥.
하이트 맥주 피쳐 하나. KGB 2병이였다. 짧은 시간에 고생했다. -_-..
생각해보면 그리 급하게 살 필요는 없었는데.
그렇게 장보고는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쉬었다.
집에 민석이가 없어서 집에서 놀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같이 맞이하는 첫 아침은 침대여야 한다는.
어디가 논리가 부족한 혜진이의 의견을 수용해서 숙소를 잡았다.
집에 침대를 들이는 것 보다는 싸기도 하고.
이왕 온건데 하고 싶은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방에 에어콘이 안되서 주인 아줌마랑 잠깐 말썽이 있었지만.
씻고. 먹을거 펴놓고. TV 보면서 잡담도 하고 했다.
아깐 좀 어색하긴 했지만. 꼬맹이는 결국 꼬맹이다. 별 수 없다.
먹을것을 실컷 사 놓고 보니 젓가락이 없길래
숙소 앞의 편의점을 다녀오니 방에서 꼬맹이가 화들짝 놀란다.
왜 그런고 하니 딴에는 놀래켜주려고 유카타 변신중.
눈치없이(?!) 일찍 들어온 덕에 100% 놀라진 않았지만 변신과정을 지켜봤다.
일본에서 찍은 사진을 봤을 땐 그냥 그랬는데.
막상 입은거 보니 꽤 귀엽기도 하고 그랬다.
근데 선입관 때문인가. 일본 전통 의상을 입으면 왠지 다소곳한게 어울려. ㅋ
마침 유카타는 행동이 불편한 옷이기 때문인지.
첫하의 장혜진도 꽤 조신하게 밖에 행동 못하는거보고 웃었다.
가끔 억지로라도 입혀봐야겠다.
어쨋거나 사온거 배부르게 먹고. 술도 마시며.
밤을 보냈다.
나도 혜진이가 변한걸 느끼니까.
저녀석도 몇달만에 만난 내가 좀 변했겠지? 어색할까?
과연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뭐. 어쨋거나 재밌었다.
당초 안면도에 놀러가기 위해 혜진이 귀국 날짜를 이리 잡았었는데.
이런저런 미묘한 사건들로 취소. 포항 가려고 했지만.
또 미묘한 일로 취소. 결국은 이래저래 그래저래 패스. 패스. 패스.
시작과는 전혀 다른 일정이 되었다.
혜진이를 보고 싶다는 준호는 경산에 오기로 했었지만.
할머님이 돌아가셔서 그것도 불투명해졌다.
결국 평소와 같은 일상. 을 영위하기로 결정.
내일은 혜진이랑 같이 출근하기로 했는데 준호에게 연락이 왔다.
뭐. 어찌어찌 볼 수 있을거 같다고 하더라.
민석이한테도 연락해 볼까 했지만.
오늘 혜진이 오는거 알텐데 별 말도 없길래.
굳이 물어보기도 뭣해서. 그냥 멍- 하니 있었는데.
준호한테서야 마산 갔다는 이야기 듣고 내심 섭섭해 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냥 다 같이 보고 싶은 것 뿐이였는데.
왜 이렇게 엇갈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별 수 없지. 세상 모두가 나는 아니고. 나와 같은 가치관은 더더욱 아니고.
시덥잖은 이상론은 그만 하자. 권해보고 싫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자.
여튼 준호와 대충 연락을 했다.
좀 고민했지만 벌써 쉬겠노라고 생각을 하니.
막상 출근하기가 너무 싫어서.
점장님께 적당히 거짓말을 둘러대고 쉬겠노라고 연락을 드렸다.
마음이 괜히 복잡했지만.
어차피 남들은 남들 삶이 있고. 필요한건 다 한다.
내가 할일은 내가 챙겨야지.
라고 마음을 다잡고. 연인과의 시간을 즐겼다.
그래. 그거면 됐지 뭐.

내가 죽일련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