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를 핥아주는 사람 -
일반적으로는 상처를 어루만지다...가 맞지 싶지만.
아무래도 나는 어루만지기보단 핥는 쪽 사람 -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 - 에 어울리는 것 같아 제목을 저리 썼다.
어루만져주는 만큼 마냥 착하다고 자신을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싶다.
그런데 쓰고보니 진짜 좀 이상한 사람 같아...
퇴근할 때가 다 되어서야. 기분이 급격히 다운됐다.
제법 덩치가 큰 제품이였는데. 도면을 보고 프로그램을 짤 때만 해도 나름 신경써서 작성했고.
실제로 가공할 때도 아슬아슬한 부분이 (나름) 잘 해결됐다.
정말 딱! 내 생각대로 가공이 완료되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선 확인차 측정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하고 다시 확인해보니. 애초에 처음부터 도면을 아예 잘못 봤던 것.
기분이 너무 좋았던터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나름 대형물이라 잔여 소재도 없어서 작업은 그대로 홀딩... 아아아. 멘붕이다.
누구 말을 빌리자면.
나는 '잘 지낼 땐 쓸모없지만, 힘들 땐 도움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적고보니 민석이가 "여자한테만 그렇겠지!"하고 비웃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내가 뭘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조금 심하게 강박관념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지랖이 과한거보면 말이다.
그래도 어릴 때 비하면 나름 현실감있게(?) 오지랖 떨고 있다 싶긴 한데 말이야.
퇴근하고 영란이를 만났다.
내가 멘붕이 오기 전부터 쓸데없는 이야길 나누고 있긴 했다.
일기를 쓰며 이름을 언급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제법 심각하게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냥 써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일기를 왜곡하거나 숨길만큼 삐뚤어질 일은 없었다 싶기도 하고.
어쨋거나. 추석 연휴 전에 우연찮게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살갑게 지내는건 아니였다.
아니 뭐. 그다지 연락을 주고 받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제자리 잡을 때까지 돌와주고 싶다는 - 괜히 죄책감도 사실은 조금 있다 - 생각도 있지만.
내가 액션 취할 일은 아니다 싶어서... 애초에 지금까진 혼자 날뛰다가 광대가 된 감도 없잖아 있고.
낮에 밑도 끝도 없이 카톡이 왔을 땐 조금 놀랐지만. 몇 마디 해보니 이녀석이 멘붕 상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있었던 자잘하고 심각한 일들 다 제쳐두고. 뭐랄까... 조금은 이해가 된다.
저질렀던? 저질렀다고 하니 뭔가 나쁜짓을 한 것 같네.
뭔가 사고를 쳤던건 물론 전적으로 본인 잘못이지만. 그런 선택을 했던 것. 저지르고 나서 쫓겼던 것. 만큼은 비슷한 일을 저질러봐서 이해가 된다.
하물며 내가 그렇게 사고치고 다녔던 건 그녀석보다 더 나이가 많을 때였으니까...
여튼 인생에서 제일 무의미하고 이룬것 없음에도 제일 힘들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어느정도는 공감대도 생기고. 이해도 된다.
하지만 결국 책임은 스스로 져야하고. 앞으로 인생 설계도 본인이 해야한다.
연인이였다는 점도 한 몫하겠지만. 내게 있었던 암흑기가 겹쳐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슬슬 이쯤되니 어느정도 패턴도 보인다고 해야할까.
마음대로 싸지르는 것 치고는. 혼나거나 비난 받는게 싫어서 포장하거나, 일탈의 직전에서 도망치는 패턴도 슬슬 보이고.
누가 들쑤셔 봐야 결국은 자기가 나서서 뭘 하지는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휩쓸려 다니고, 좋게 말하면 언젠가의 표현을 빌려 '할말 못하는 여자'다.
가장 변했으면... 했던 부분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한걸음 떨어지니 더 잘 알겠다는 것도. 복잡미묘한 문제인 것 같긴 하다.
반대로 앞으로 누군가와 사랑하게 된다면, 적당히 알게되는 기술도 익힐 필요가 있겠다 싶다. ㅋ
뭐. 어쨋거나. 그 쫓기는 듯한 마음만은 십분 이해하기에. 스트레스 풀어주기로 했다.
마음이 풀린 뒤, 다시 잉여짓을 하던, 여기저기 사고치고 다니던. 정신차리고 열심히 살던. 그건 이후 문제다.
지금 무기력한건 곤란하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고 싶은 말도 해라.
어차피 이렇게 시간 보낸다 한들, 자기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잠시나마 네 멋대로 싸질러버려라.
결국 사람은 닥치면 준비가 되어 있던, 그렇지 않던 선택을 하고 액션을 취해야 한다.
도망쳐봐야 대부분의 중요한 일은 계속 쫓아오고, 도망칠 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만 한다.
그러니 평소에 뭐든 꿈틀대서. 결정적일 때 도망치지 않고.
지랄 개 좇같은 상황이 다가와도 어떻게든 싸지르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니 이젠 도망따윈 치지 마라.
고 하고 싶고. 열심히 이야기 했는데. 얼마나 전달됐을런지.
예나 지금이나 난 잔소리셔틀.
한편으로 나는. 타인의 문제를 위해주면서 내 고민을 푸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덕분에 내가 낸 불량으로 왔던 멘붕은 얼렁뚱땅 해결됐다.
민석이 하나 없어지니(음? 없어졌다니 ㅋㅋ) 너무 심심했던 가운데, 나름대로 자극돋고, 재밌었고, 좋았지만 서글픈 날이였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도 세상에 흔해빠진 쓰레기 중에 하나다.
그래서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낸다.
위에 썻듯 요 근래의 나는 내가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다.
아마. 나는 나대로, 나라는 이 이상한 생명체에 납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