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께서 술을 드셨다 -
회사가 일찍 마쳤다.
우연의 일치인지 특정 조건(카톡이라던가)를 만족하면 그날은 일찍 마치곤 한다.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는데 몇 번 반복되다보니 이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우연이겠지. 설사 필연이라 한들 별 의미는 없지만.
아버지께서 간만에 술을 드시러 가셨다.
삼성에서 근무할 때, 같은 부서분들을 만나기로 하셨다고 한다.
특정 몇몇분을 만나시는게 아니라. 아예 생산관리부 단위로 모이는. 제법 모양새를 갖춰 여는 자리 같았다.
집에와서 씻고, 운동하고. 게임 좀 하다가 시계를 보니 23시 30분. 슬슬 잘 시간이다.
왠일로 아직까지 아버지께서 귀가하시지 않으셨다.
별일이네...?
늦으시면 모시러 가야겠다 싶어 일단 눈을 좀 붙이기로 했다.
'엄마, 아버지께 전화오시면 저 깨워주세요' 하고 말씀드린뒤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가 깨우셔서 눈을 떴다.
00시 30분. 대략 한시간 쯤 잔 것 같다.
어머니께 아버지께서 어디 게시는지 듣고. 모시러 다녀왔다.
그 사이에 자잘한 헤프닝은 있었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과감히 생략. 어쨋거나 모시고 왔다.
간만에 얼큰하게 드신 아버지를 보았다.
집에 모셔온 뒤 옷을 벗겨드리고, 젖은 수건으로 대충 닦아드린뒤, 이불을 덮어드렸다.
이내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크르르르르르르르.
생각해보면 어렸을 땐 아버지가 술 드시는게 싫었다.
술 냄새 폴폴 풍기시면서 자는 날 깨우시는 것도, 까칠까칠한 수염을 깎지도 않으신채 볼을 비비시는 것도 싫었다.
또 어머니께서 너무 싫어하시니까. 나도 덩달아 싫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되새겨보면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생이 되서도 아버지께서 술을 얼큰하게 드시는걸 싫어했던 것 같다.
(지금 나의 술버릇은 어머니께서 주사를 너무너무너무 싫어하시는 것과 무관하진 않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왔을 무렵... 부터일까.
조금씩 아버지가 이해가 된달까. 아버지께서 얼마나 대단하신지 알게 됐달까(물론 어머니도 킹왕짱 대단하시지만).
한편으론 나도 술을 배우고, 사회생활하며 합리화를 한다거나. 혹은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것 등을 이해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여튼 곤히 잠드신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이 기분은, 어렸을 때완 사뭇 다른 것이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 방에 누워. 잠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며 킥킥댔다.
뭐. 그렇다고 한들. 내일 아침에 어머니께 깨지시는 것만큼은 내가 어쩔 수 없지. ㅋㅋ
ㅋㅋㅋㅋㅋ 하며 잠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