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다 쓰러져가는 보금자리 ~스물라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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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는 어젯 밤 -

 

 어제 그녀와 헤어질 때만 해도, 사실 난  '더이상은 볼 일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그녀요, 

 

 구미역에서 배웅받은 것도 나였기 때문이다.

 

 

 

 '뭐. 생각해보면 키크고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나의 캐릭터상 별 수 없겠지.'

 

 하고 반쯤 체념 및 인정(..)을 하며 배웅을 받고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리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역시나 어머니께서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땠냐고 물으셨고. 나도 순순히 있는 그대로 답했다.

 

 

 

 주선자분이 말씀하셨던 대로 착하고, 참하고, 생활력 있는 아가씨인 것 같다.

 

 카톡 사진보단 실물이 낫더라.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다시 보긴 어려울 듯 하다.

 

...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천천히 한 뒤, 좋은 여자 였고, 좋은 경험이였다. 로 마무리 지었다.

 

 어머니의 반응은 읽을 수 없었지만 수긍하는 분위기. 뭐 어차피 결혼하라고 내보내신건 아닐테고. ㅋ

 

 

 

 

 그러고 있는데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는다며 투덜대는 내용이였다. (내심 '정말 친구를 만나긴 하는구나'하고 안도했던 건 안 비밀)

 

 상모에서 만나기로 한 덕에, 버스타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럴거면 상모까지 데려다 드려도 괜찮았는데. 제가 센스없이 배웅을 받고 왔네요.' 라고 보냈다.

 

 머지않아 '그럼 다음엔 집에 바래다 주세요 ^^' 라고 반응이 왔다.

 

 음...? 이거 뭐지. 내가 방금까지 만나고 온 사람과 카톡 보낸 사람이 동일인물이 맞는건가...!

 

 그리고. 어쩌다 보니 다음날. 즉 오늘도 만나기로 했다. 억지로 갖다 붙인 명목은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

 

 

 

 

 

 - 그리고 오늘 : After -

 

 사실 만나러 가면서도 뭔가 어떨떨한 기분이였다.

 

 어젠 딱히 나쁠 것도 없었지만. 반대로 내가 뭘 잘해준 기억도 없었던터라...

 

 쓸데없는 마이너스적 사고를 총동원해서, 이런저런 결론을 도출해봤지만 역시 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

 

 억지로 내린 결론의 패턴은 대충 이러했다.

 

 

 

 첫번째. 주선자인 그녀가 고모가 한두번 더 만나보라고 닦달해서.

 

 두번째. 사촌 여동생 민하와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을 경우(첫 만남이 마음에 안들어도 서너번은 만나본 뒤 결정한다 카더라).

 

 세번째. 어떤 차인지 보려고.

 

 ...어느것 하나 그다지 긍정적인 내용이 없다.

 

 

 

 어쨌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은 11시. 정말 드물게도 데리러 갔다. 30년 인생동안 누굴 데리러 간 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데.

 

 오오. 신기하다 소개팅. 오오 신기하다 새로운 경험.

 

 어쨌거나 약속시간에 도착. 무사히 만났다. 그리고 한 서너시간 있다가 헤어졌다.

 

 

 

 원래 만나서 할 일은 내가 정하기로 했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무엇을 할 수가 없었다(사실 고민만 했지, 뭐 할진 정하지도 못했다).

 

 결국 배가 고프고, 칼국수가 먹고 싶다는 그녀가 제안을 따라 금오산으로 이동, 칼국수와 파전을 사먹었다.

 

 칼국수는 평범했지만 파전은 제법이였던 터라, 동동주 한잔이 생각났지만...

 

 시간도 이르고. 차도 있고. 같이 있는 사람도...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이래저래 동동주는 무리였다.

 

 어쨌거나 밥을 먹은 뒤엔 금오산 전망대를 지나쳐서, 그녀의 집 근처 카페에 갔다.

 

 커피와 와플을 시켜먹었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당초 목적대로 바래다줬다).

 

 

 

 

 아이러니한건,

 

 만나서의 느낌은 어제와 마찬가지. 딱히 싫어하는 듯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보지도 않았다.

 

 싫은건가! 좋은건 아닌것 같고! 으앙. 오늘은 또 왜 보자고 했던걸까!

 

 어렸을 때 이래저래 놀러 다닌 덕에,

 

 정작 정상적(..)인 소개팅 한번 해 본적이 없어서 이런 상황에 어리버리... 몇번 더 해보면 익숙해질까. 한심해! 으아아아아앙.

 

 

 

 

 

 - 그녀 이야기 -

 

 어젠 잘 몰랐는데.

 

 오늘 이런저런 이야길 해보다 느낀건.

 

 음... 그렇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도, 의욕도 넘치는 타입의 사람이였다.

 

 밥도 꼬박꼬박 해 먹고. 일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운동으로 클라이밍도 하는. 자기 계발서를 꾸준히 읽는...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를 자잘하게 쪼개서 쓰고 있으리라.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의외로 연애 자체는 우선순위가 낫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어떻게 아냐며 순순히 긍정하더라.

 

 

 

 어떻게 아냐고? 그야...

 

 난 어릴 때부터 의욕 넘치는 능동적인 여자들을 좋아해왔고.

 

 그런 여자들과 막상 연애를 하게 되면 외로워질 수 밖에 없다는걸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뭐. 지금은 연애중이 아니니 별 문제 없고.

 

 그저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느낀건.

 

 오랫만에 긍정 에너지. 능동 에너지를 나눠받은 느낌이였다는 것.

 

 열심히 사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빛나보인다. 늘 그렇게 생각해왔고, 또 새삼스럽지만 그리 느꼈다.

 

 이래저래 느슨했던 나를 졸라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후엔 출근. 잔업했다. 얍.

 

 

 

 

 여담이지만. 차가 바뀌고 난 뒤. 

 

 어떤 여자를 가장 먼저 태우게 되려나. 하고 생각한적이 있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인생 참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