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소 -
간만에 민석이와 홍식이를 만났다.
그나마 친구 중에는 민석이를 자주 보는 편이지만, 옛날 생각하면 자주 보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잉여스레 돼지라서 자연스레 술 약속을 잡지 못하는 병신같은 인생일 뿐이고,
민석이는 토끼같은 두 딸들과 여우같은 와이프에 충실하느라 별 수 없이 바쁜 것 뿐이다.
딱히 관계에 문제가 있다기 보단, 자연스럽게 보는 횟수가 줄어든 것 뿐.
물론 인생의 밀도와 질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20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한 홍식이는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빨리 '힘듦'을 겪었다.
그래도 그 고생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오랜 계약직 생활 끝에 얼마전에 한화 그룹의 정직원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소고기'를 쏘기로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올해 설부터 있었다. 8월 즈음 정직원이 될 예정이니 추석 전에 소고기 한번 쏘겠다는, 그런 공약이였다.
참 오랜 시간 기다려서, 드디어 소고기를 얻어 먹었다. 좋은 일로 얻어먹다니, 기쁘지 아니한가.
아쉽게도 소는 한우는 아니였다.
가끔 가족끼리도 한우를 먹고, 심지어 회사 회식으로도 한우 먹으러 가는지라,
미국산 소고기 먹는다는 이야기 들었을 땐, 까놓고 말해서 '이거 사려고 그 오랜시간 공지했나!'란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축하의 마음이 희석된건 아니고. 불만이 폭발했었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소소한 불만아닌 불만이였을 뿐.
생각보다 고기는 깔끔하게 나왔고. 맛있게 잘 먹었다.
혼자 한가하고 병신같은 총각이라 그런지, 바쁜 유부남 라이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건 아마도, 초등학생이 어른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것과 같은 맥락이리라.
고기를 먹고 살짝 업된 기분으로 2차를 갔다.
사실 생각보다 고기 값이 저렴했기에 조금 더 뜯어내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이렇게 쓰다보니 나 정말 쓰레기네. 친구 등처먹으려고 작정한거 같잖아! ㅋㅋ
- 주제를 알아라 -
술을 마시다 습관적 멘트가 나왔다.
'여자 소개시켜 주세여!'
사실 이건 마음에 없는 소리와 진심이 반반 정도 섞인 멘트다.
듣는 사람들은 다 개소리로 듣고 넘기는 것 같은데, 나는 나름 절박한데 아무도 몰라준다.
아니, 내가 배가 덜고파서 그런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돼지라서 그런가. 매력이 없어서 그런가.
'연하'였으면 좋겠다.
'4년제' 대학은 나왔으면 좋겠다. 라는 나의 말에
'이제 나이도 있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눈을 높게 둘거냐'는 리액션을 받았다.
당시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별볼일 없는 인간이기로서니,
친하다 싶은 친구도 고작 저정도 조건 내건 내게 '눈이 높다'고 하는구나.
아이고. 의미없다.
그러지 않아야지...라고 그때도 생각했는데. 아픈 곳을 찔렸는지,
병신같이 모자란 사람이라 아픈곳을 찔려 발끈했는지 기분이 확 더러워졌고.
머지 않아 자리는 끝나고, 집에 왔다.
지금은 좀 괜찮아 졌지만 하루 이틀은 계속 기분이 별로였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딱히 이성을 만날 기회도, 능력도 없다 싶었다.
잊은 듯, 그렇지 않은 듯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누군가가 손을 비실비실 내미는 느낌이 들었다.
나란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