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공원 -
조금 지난 일이지만, 간만에 쓰는 일기이기도 하고. 간만에 생각나기도 해서...
가끔 서울에 들릴 때면 어지간하면 들리는 곳이 있다.
몽촌토성역. 올림픽 공원. 강변 테크노마트 9층에 있는 하늘 공원.
처음에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곤 했지만, 더이상 의미부여가 불가능해진 이후에는 그냥 습관적으로 들리는 곳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그곳에서 기억이나 발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냥 가끔 가곤 한다.
하늘 공원의 한쪽 구석엔 작은 전망대 비슷한 곳이 있다.
녹색 난간이 있고, 그 위로 얇은 철로 된 케이블(녹슬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서스 계열일지도)이 쳐져 있다.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겠지.
거기서 내려다보면 한강 근처의 전경이 보인다. 넓은 도로에는 언제나 차가 빡빡하고,
저 멀리에는 살풍경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주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자시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리라.
굳이 저 멀리 보이는 풍경까지 갈 것도 없이, 이 좁은 전망대에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녹색 난간을 둘러보면 많은 낙서들이 있다. 사랑을 속삭이는 낙서, 고백하는 낙서, 우정을 다지는 낙서, 디스하는 낙서 등등...
언제고 나도 아랫층의 마트에서 산 매직으로 당시의 기분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젠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다만 인위적으로 깨끗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주기적으로 청소하지 않나 싶다.
구미의 작은 공원에 한 낙서는 흐릿하지만 아직까지도 있던데,
역시 서울인데다가 (자칭) 관광명소라 그런지 하늘공원 전망대의 낙서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작년 11월 1일.
꿈같은 하루를 보내고, 머지 않아 다시 서울을 찾았던 나는.
당시의 기억을 담은 낙서가 없어진 것에 슬퍼하며 새로이 낙서를 했다.
그리고 가끔 그 낙서를 확인하곤 했는데, 아쉽게도 올 여름쯤엔 그 낙서도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서서히 흐려져가는 낙서를 볼 때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누군가가, 마찬가지로 낙서를 해주지 않을까?
란 기대를 했던 것도 같다.
나이가 이만큼 들었는데도. 소설이나 영화같은 로맨스를 꿈꾸고 있는 걸까.
아쉽게도 그럴리는 없다는 것은 경험상 잘 알고 있다.
다시 없을 사랑같은 말이 오가도. 그것은 머지 않아 끝나고.
결국 나혼자 과거를 과거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자서 많은 시간을 질질 끌어간다.
올 2월에 '과거 선고'를 받았을 땐, 미리 깨닫지 못한 자신에 대한 혐오가 가장 먼저 일어났고.
머지않아 나의 세상에서 증발해 이제는 정말 기억속의 존재라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했다.
시간이 이리 많이 지났는데도...
그러던 중 문득 발견했다.
철로 된 줄에 자물쇠가 드문드문 걸려 있는 것이였다.
남산 타워에 걸려 있는건 봤는데, 여기도 걸려 있구나...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걸려 있었는데 내가 못 봤나? 아니면 근래에 하나 둘씩 걸기 시작한건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자물쇠를 하나 샀다.
알루미늄에 기계로 글자를 새겨넣었다.
글자가 잘 보이라고 흑색으로 마감을 한 뒤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디스를 하는 문구를 새겨놓기도 하고, 장난스런 말을 새겨놓기도 하고, 노래 가사를 써넣기도 했다.
알루미늄을 자물쇠에 걸어 쇠줄에 걸어 놓았다.
자물쇠가 보기엔 이쁜데 막상 사고보니 싸구려인가, 조금 덜컥덜컥 했지만, 시간이 없어 그대로 걸어 놓았다.
어차피 사람 손으론 못 뜯을거고, 관리자가 청소한다고 뜯어내면 튼튼한 자물쇠도 별 수 없지 뭐(..)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잘 매달려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당사가자 본다면 분노하거나, 그마저도 관심없거나, 자기가 당사자인줄도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낙서보다는 오래 그 자리를 지키지 않을까 싶다.
그래, 낙서보다는. 조금 더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주렴.
글자를 새겨 넣을 때의 내 마음을, 간직한채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곳을 지켜주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