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다 쓰러져가는 보금자리 ~스물라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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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연락을 하지 않은지 약 2주.

이런 일이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도 이런건 너무 싫다. 라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서 씁쓸히 웃었다.

그때도 이 아이는 말이 없었고. 결국 나는 참다 못해 말을 했었지.

그제서야 나오는 변명들에 마음이 약해졌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그때부터 이미 균열은 생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긋나고 있었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만 그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기 싫어

그때의 일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저녀석은 나를 좋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고.




딱히 일상이 변해 있던 것은 아니였다.

처음엔 섭섭했고. 이윽고 화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무색해졌다.

적어도 연인에게만큼은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매달릴 필요도 없었던지라.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던 것이다.




조금 망설이다 폰을 열고. 단축키를 눌렀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뻔했다.

가만히 냅두면 이대로 연락이 없다가 자연스레 이별이리라.

난 그런건 싫었다. 이별이면 이별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게 좋다.

설사 그게 더 서로의 마음이 아프더라도.




하지만 성격상 그녀석이 말을 꺼낼 일은 없겠지.

굳이 하기 싫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통화를 한다는게 아이러니했지만.

나름대로 그녀석에게 대화할, 말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굳이 말하자면. 정리할 시간...

혹은. 정말 만에 하나 화해할지도 모르고.





- 숨겨온 이야기 -

이번에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길 그다지 하지 않았다.

혜진이 사귈 때 워낙 일을 크게 벌렸던지라 이별 뒤에 처신이 힘들었던 반작용이기도 했고.

사귀게 된 과정이 썩 매끄럽지 않았던 것도 이유중에 하나였다.

몇 번 고민했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코흘리개 아이가 아니니 굳이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리가 없기도 했고.




당시 그녀석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저냥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녀석 준비하는게 너무 애매모호하다.

게다가 시험이 코앞인데 너무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것이 싫었다.

어쩌다보니 연애가 시작됐다.

나는 늘 잔소리를 했고. 어찌됐건 그녀석도 겉으로는 안정을 찾고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 아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시험이 끝나자 마자 헤어질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였다.




...아쉽게도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녀석이 얼만큼 실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실망도 정말 컸다.

하지만 의외로. 선뜻 이별의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정말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였다. 개인적으로는 참 혼란스러웠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개인적인 방황도 대충 정리가 될 무렵. 내 생각의 방향은 이랬다.

뭐. 저녀석 시험을 도와서 어떻게든 성공시키면. 문제없이 않겠냐 라는 생각.

그래서 그녀석에게 앞으로는 이러이러면 좋겠다.

포기하지 말라. 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런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이제 질려서요 -

하지만 역시. 연인에게 언제언제 헤어지겠다는 둥.

혹은 예민한 내 성격은 문제였나보다.

그렇게 미련하게 보일 정도로 내가 좋다던 그녀석은 어느샌가 살짝 변했다.

새로 기댈 사람이 생긴 것 같았다.

혜진이 때 일이 생각나면서 나는 굉장히 민감해졌다.

하지만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은 끝이 없었고. 이 즈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엄마가 혜진이를 기억하길.

그리 반대할 때는 죽어라 좋다고 하더니 슬슬 인정해줄만 하니 헤어졌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웃었다. 실컷 밉상질 하다가.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려고 하니 이제 그 사람은 내게 질려 있었던 것이다.





통화. 간만의 통화에 상대방은 존댓말을 썼다.

일부러 존댓말을 하는 것 같은게 아니라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존댓말.

아아. 그렇구나. 하고 한숨지었다.

확답을 지으려 했었지만 내심 작은 기대마저도 이때 사라졌다.

죽을만큼 좋아했던 것도 아니면서 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나하긴 싫고 남주기 아까운 심리?

아깝진 않은데...




어쨋거나.

그녀석은 할 말이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제 질렸다고.



그야말로 예상의 범위였기 때문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아니면 2008년 이후 이런 감정은 조금 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그렇게 정열적으로 사랑하지 않았던걸까.

하지만 살짝 아쉽기도 했다. 역시나.


진작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 연락도 없다가. 나온 한마디는 질려서요.

은근히 잔인한 구석이 있다. 라고 생각하고 웃었다.



반의례적으로 재고해줄 것을 물었다.

상대방은 역시 거절했다.




평소 내 말 한마디에 울고 웃던 녀석은 아니였다.

워낙 짧은 시간에 변해서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응하는 법일테니.

이제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그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낯설었다.





- 눈물, 그리고 미안해 -

은영이도 잘 울었고. 혜진이도 잘 울었다.

이녀석은 잘 우는 편은 아니였던 걸로 기억하지만 사실 알 수 없다.

통화하면서 들었던 것이라곤. 미안하다는 말과 훌쩍거리는 소리.

난 웃었다. 왜 우는걸까. 뭐가 미안한걸까. 생각하면서.



...눈물. 여자의 눈물.



비겁하기 이를데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 거짓말쟁이 -

오늘 민석이에게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이야기 했다.

사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당황하는건 당연한 수순이였다.

딱히 이야기 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째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말했다.

그리고 당연히 민석이는 섭섭하다는 표현을 했다.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애초에 내 마음이 언제 헤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려웠다.

한 2월 쯤 되면 말할 생각이긴 했다.

시험을 망쳐서 헤어지면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혹은 정말 잘 쳤으면 또 자랑을 하면서. 소개할 생각이였다.

요 근래는 찌지고 볶아도 이녀석을 키워볼생각이였기 때문에 슬슬 소개하려 했었다.

뭐. 어쨋거나. 결국 소개를 하긴 했구나.




나를 좋아했고 자신만은 다르다며 호언장담했던

- 그러고보면 나도 참 단순하게 잘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

연인이였던 사람은 내게 질리고 새 사람을 만나며.

친구에겐 뭔가를 주욱 숨겨온 것이 되어버렸다. 속이 아팠다.





- 에필로그 -

마음의 준비를 어느정도 했기 때문에 정말 충격적이긴 않았다.

조금 실망하긴 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일로 여성에 대한 불신은 조금 가라앉았다.

어떻게 보면 혜진이 때와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역시 나만을 바라보고 좋아해주는 일은 없다는 걸 그냥 느꼈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나도 상대방에게.



이런 이야길 서로 이야기로 풀어서 느꼈다면 좋았겠지만. 어떻게든 느꼈으니 됐다.

그리고 전과 같이 늘 일상처럼. 조용이 정리하려고 한다.




언제고 연락이 올 일이 있을까?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칠 일이 있을까?

글쎄. 아마 둘다 희박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같은 번호를 고집하는건.

어쩌다 내 생각이 났을 때 연락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니깐.

언제고 연락이 오면. 그땐 이미 다 털어버렸을 테니 반갑게 맞아줘야겠다.

잘 지내냐고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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