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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하면서 배운다 :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나 -

 

 도면이 나왔다.

 

 

 

 전에 한참 바쁠 때 나왔던 도면인데, 그땐 일정상 진행이 불가능했었기에 발주청에 고사했던 제품이다.

 

 2D가공이 주가 되는 우리 회사에선 드물게 3D가공을 이용한 제품이였다.

 

 이때까지 3D가공이 적용된 제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장님은 2D에 특화된 분이시고. 나도 잠깐 독학했던게 다라 나올 때마다 좀 버벅였다.

 

 결국 그때마다 책 찾아가며 어찌어찌 해결해내긴 했지만. 자주 다루지 않다보니 기술이라고 부를 만큼 내게 축적되진 않더라.

 

 

 여튼 도면을 보고. 혼자 생각했다.

 

 '어차피 저거, 나한테 넘어올테니 오늘은 퇴근하고 남아서 저거 프로그램이나 짜 봐야겠다'

 

 분명 삽질은 하겠지만 어찌어찌 가공해봐야겠다며 혼자 머리를 막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퇴근시간이 코 앞인데 이상하게 그 도면이 내게 배포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휙 둘러봤더니. 완성품이 떡하니 있는 것 아닌가. 뭐지. 이거 어떻게 한거지?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부장님이 3D가공을 주로 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NC코드를 생성, 가공한거라고 한다.

 

 우리 회사 일인데 왜 남한테 고개 숙여가며 코드를 받아야하나 싶어 문득 짜증이 났다.

 

 아. 오늘도 표정이 일그러지려고 한다.

 

 결국 민석이한테 전화를 해서 꿍시렁꿍시렁 댔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며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툴툴댔다.

 

 민석이가 말한다.

 

 '이 생키, 기름쟁이 다 됐네!'

 

 

 

 

 물론 민석이는 별다른 의미 없이 한 말임에도.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왜 나는 기분이 나빴던 걸까.

 

 우리 회사에선 나 혼자 3D 할 줄 안다고 스스로를 과대평가 하고 있었나?

 

 아니면 머시닝 센터 작업자는 둘인데, 상의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화가 났던 걸까?

 

 왜 나는 기분이 나빴던 걸까.

 

 

 

 

 뭐.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였다. 

 

 고작 3년 해놓고 되잖은 기술 갖고 있다고 그새 초심을 잃고 '나도 쫌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알고보면 별다른 기술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재 꼴 같잖은 프라이드만 생긴것이였다.

 

 처음 입사할 때. 또 이후로 한동안. 기름쟁이들의 같잖은 프라이드 욕하고 비웃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다는데 놀랐다.

 

 그래서 민석이의 말을 들었을 때 순간 확 부끄러웠던 것 같다.

 

 

 

 

 아아. 욕하면서 배운다더니... 이래서 사람은 주변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맨날 말로는 '다른 기름쟁이처럼 되지 않겠어!'라고 해놓고서 현실은 나도 흔하디 흔한 기름쟁이.

 

 라이프 스타일이나 벌이 같은게 아니라. 썩어빠진 멘탈 상태가...

 

 

 

 

 ...여러모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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