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
어젯밤엔 잠을 잘 못잤다.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잠이 잘 수가 없었다.
괜히 마음이 붕 떠버려서. 흥분상태였달까..
어렸을때 아버지에게 맞거나 할때보다.
더 무섭고. 서글프고. 씁쓸했던 것 같다.
그래도 좀 생각해보니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좀 생각을 고쳐먹긴 했다.
어쨋거나 어젯밤에 병원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할머니 댁에 온건 좋은데.
밤에 잠이 안와서 좀 돌아다니다 보니. 안방문이 잠겼다. ㄱ-
아마 고모가 잠그셨지 싶은데...
결국은 본의아니게 큰형에 신혼방에 가서 잤다.
말이 신혼방이지. 명절에만 이용하는 것 뿐이고.
형수는 지금 몸이 무거우셔서 방에 돌아와계셨는데...
별 수 있나. 잘 데가 없는데...
형수한테 양해를 구하고. 잠든게 새벽 3시.
게다가 보일러도 안 틀어져 있어서 얼어죽을 뻔했고.
때가 때이니만큼 일어난게 새벽 6시.
아놔. 피곤해.
아침에는 "염"이란걸 했다.
사실 장례식을 제대로 겪어 보는건 처음이라서 절차가 생소했지만.
이럴때 보고 배워두는거지 싶어서. 따라갔다.
실제로 염 하는걸 보지는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시신 곁에 모여서 흐느껴 우셨기 때문이다.
괜히 억지로 비집도 들어갈 이유도 없었고.
솔직히 마음은 울적했지만 직접 뭔가 와닿지 않아서 뒤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저 기분만 착잡했다.
뒤에서 봐도 절차는 꽤 복잡했다.
노화로 바싹 마르신 할머니의 시신은 명주와 삼베 등으로 곱게 싸였고.
이윽고 염이 끝났다.
자세히 보지도 못했고. 다른 분의 염을 본 적도 없어서.
사실 나는 좀 갸우뚱하긴 했는데. 큰 고모가 설명을 해주셨다.
매장하기 전에 하는 일종의 행사라는 것.
할머니는 별다른 질병없이 노환으로 돌아가신 것이기 때문에 시신이 참 고왔다는 것.
돌아가시기 전에 모두신 돈으로 저고리를 한벌 사 두셨는데.
그걸 입고 저렇게 평안한 표정으로 매장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
....내용은 이해했지만 100% 와닿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곱게 돌아가셨다는 거구나.
낮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손님이 띄엄띄엄 오셨고. 나를 비롯한 손주들이 손님들을 접대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 준호 오다 -
어제의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보통 손님이 둘째날에 많이 오니까.
인균이형이랑 천균이형에게 친구들을 좀 불러서 도와줄 것을 부탁하셨다.
하지만 이미 직장인이고 전국에 친구들이 흩어져서 힘들다나..
아버지께서는 내게도 말씀하셨고.
나는 장례 절차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알겠노라고 했다.
홍식이는 일본에서 신혼여행 중.
민석이와 준호는 고맙게도 나를 위로해주고 와주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민석이는 내일이 예비군이라서 내가 거절했다.
마음만이라도 고맙다.
혜진이는... 오라고 이야기 안했다.
친구라면 몰라. 여자친구는 살짝 애매하기도 했고.
어제 울고불고 난리쳤는데. 괜히 바쁜거 방해하기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쨋거나 저녁에 준호가 왔다.
상주이신 큰아버지들은 왠 젊은...이라기 보다는 어린애가.
와서 절 하고 인사하니 당황해 하시면서도 상주로서 예를 갖추셨다.
내가 가서 내 친구고. 도와주러 왔다고 인사했다.
근데 결론을 말하자면 친구들이 조모상까지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준호가 오기 전에 몇번이나 "아버지가 말씀하신게 맞냐"라고 물어본게 이해가 됐다.
더욱이 의외로 손자들(나를 포함해서)이 10명 가까이 된 덕분에.
바쁘긴 했지만 일손이 크게 부족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준호를 괜히 먼걸음 시킨 것이였다.
아. 참. 나란 인간은 민폐의 연속이다.
나는 준호에게 밥을 대접하고 짧게 이야기 했다.
반갑긴 했지만 느긋하게 이야기 할 상황은 아니였으니깐.
어머니께 물어보니 크게 일손은 필요 없을거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진짜 친구가 왔다는데 놀라면서도 고마워 하셨다.
준호는 먼길 와서 밥만 먹고 돌아갔다.
굉장히 미안했다.
인균이 형이 차를 태워서 신탄진 역까지 데려다 줬고.
준호는 서울로 돌아갔다.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 인균이 형이 부러움, 칭찬을 섞어 준호를 좋게 평가해줬다.
새삼스레 준호나 민석이.
이런 일이 있을때 선뜻 도와주려는 친구들이 고마워졌다.
나도 나중에 친구들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사람과 사람들 -
준호 보내고 계속 일 도와드리면서 생각한 거라면.
사람과 사람이라는게 쉬우면서도 어렵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세상이 넓으면서도 좁다는걸 알았다.
큰 이모부는 암으로 몇년째 고생하시면서도 먼길 오셨고.
영철이, 영길이 형. 외삼촌. 매형들도 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몇년전에 사고를 당하셔서 잘 걷지도 못하시는 이모부도 오셔서 위로해주셨다.
아버지의 삼성전자 입사 동기분들도 오셨고.
미광 아파트의 친목계 분들도 오셨다.
준호도 왔고. 이래저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우리 아버지 뿐 아니라 다른 어른들의 일가 친적, 동료, 친구분들이 오셨다.
어쩌면 형식적이 되어 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도.
굉장히 감동적인 광경이였던 것 같다.
슬픔과 기쁨은 나누는 거라고 했던가.
손님이 많이 올수록 힘들다곤 해도. 이렇게 사람끼리 엮인 것도 좋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도 열심히 했다.
- 돈 -
새벽엔 천균이형, 은경이 누나와 부조금을 정리했다.
큰 고모부의 말씀에 따르면 이렇게 돈을 계산하는게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는게 아니라.
"관계"를 돈독히 함과 동시에 "빚"지는 거라고 하셨다.
또 다음에 상대방의 기쁘거나 슬픈 일은 가서 도와줘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일이 기록해서 챙겨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의외로 돈은 굉장히 많았다. ㄱ-
1억에 가까운 돈이 현금이니 꽤 무지막지 한 감이 있었다.
돈 정리하는데 머리가 핑핑 돌았다.
결과적으로 총 액수가 한번에 맞았기 때문에 새벽 3시쯤에 작업이 끝났다.
안 맞았더라면.... 상상하기도 싫다.
덧붙여 큰 고모는 빨리 주무시고 싶어하셨지만.
나나 천균이형, 은경이 누나가 한자를 잘 몰랐기 때문에.
우리와 더불어 밤을 새셔야 했다.
그렇게 바쁘던 둘째날 밤이 저물어 갔다.
어젯밤엔 잠을 잘 못잤다.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잠이 잘 수가 없었다.
괜히 마음이 붕 떠버려서. 흥분상태였달까..
어렸을때 아버지에게 맞거나 할때보다.
더 무섭고. 서글프고. 씁쓸했던 것 같다.
그래도 좀 생각해보니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좀 생각을 고쳐먹긴 했다.
어쨋거나 어젯밤에 병원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할머니 댁에 온건 좋은데.
밤에 잠이 안와서 좀 돌아다니다 보니. 안방문이 잠겼다. ㄱ-
아마 고모가 잠그셨지 싶은데...
결국은 본의아니게 큰형에 신혼방에 가서 잤다.
말이 신혼방이지. 명절에만 이용하는 것 뿐이고.
형수는 지금 몸이 무거우셔서 방에 돌아와계셨는데...
별 수 있나. 잘 데가 없는데...
형수한테 양해를 구하고. 잠든게 새벽 3시.
게다가 보일러도 안 틀어져 있어서 얼어죽을 뻔했고.
때가 때이니만큼 일어난게 새벽 6시.
아놔. 피곤해.
아침에는 "염"이란걸 했다.
사실 장례식을 제대로 겪어 보는건 처음이라서 절차가 생소했지만.
이럴때 보고 배워두는거지 싶어서. 따라갔다.
실제로 염 하는걸 보지는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시신 곁에 모여서 흐느껴 우셨기 때문이다.
괜히 억지로 비집도 들어갈 이유도 없었고.
솔직히 마음은 울적했지만 직접 뭔가 와닿지 않아서 뒤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저 기분만 착잡했다.
뒤에서 봐도 절차는 꽤 복잡했다.
노화로 바싹 마르신 할머니의 시신은 명주와 삼베 등으로 곱게 싸였고.
이윽고 염이 끝났다.
자세히 보지도 못했고. 다른 분의 염을 본 적도 없어서.
사실 나는 좀 갸우뚱하긴 했는데. 큰 고모가 설명을 해주셨다.
매장하기 전에 하는 일종의 행사라는 것.
할머니는 별다른 질병없이 노환으로 돌아가신 것이기 때문에 시신이 참 고왔다는 것.
돌아가시기 전에 모두신 돈으로 저고리를 한벌 사 두셨는데.
그걸 입고 저렇게 평안한 표정으로 매장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
....내용은 이해했지만 100% 와닿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곱게 돌아가셨다는 거구나.
낮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손님이 띄엄띄엄 오셨고. 나를 비롯한 손주들이 손님들을 접대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 준호 오다 -
어제의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보통 손님이 둘째날에 많이 오니까.
인균이형이랑 천균이형에게 친구들을 좀 불러서 도와줄 것을 부탁하셨다.
하지만 이미 직장인이고 전국에 친구들이 흩어져서 힘들다나..
아버지께서는 내게도 말씀하셨고.
나는 장례 절차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알겠노라고 했다.
홍식이는 일본에서 신혼여행 중.
민석이와 준호는 고맙게도 나를 위로해주고 와주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민석이는 내일이 예비군이라서 내가 거절했다.
마음만이라도 고맙다.
혜진이는... 오라고 이야기 안했다.
친구라면 몰라. 여자친구는 살짝 애매하기도 했고.
어제 울고불고 난리쳤는데. 괜히 바쁜거 방해하기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쨋거나 저녁에 준호가 왔다.
상주이신 큰아버지들은 왠 젊은...이라기 보다는 어린애가.
와서 절 하고 인사하니 당황해 하시면서도 상주로서 예를 갖추셨다.
내가 가서 내 친구고. 도와주러 왔다고 인사했다.
근데 결론을 말하자면 친구들이 조모상까지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준호가 오기 전에 몇번이나 "아버지가 말씀하신게 맞냐"라고 물어본게 이해가 됐다.
더욱이 의외로 손자들(나를 포함해서)이 10명 가까이 된 덕분에.
바쁘긴 했지만 일손이 크게 부족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준호를 괜히 먼걸음 시킨 것이였다.
아. 참. 나란 인간은 민폐의 연속이다.
나는 준호에게 밥을 대접하고 짧게 이야기 했다.
반갑긴 했지만 느긋하게 이야기 할 상황은 아니였으니깐.
어머니께 물어보니 크게 일손은 필요 없을거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진짜 친구가 왔다는데 놀라면서도 고마워 하셨다.
준호는 먼길 와서 밥만 먹고 돌아갔다.
굉장히 미안했다.
인균이 형이 차를 태워서 신탄진 역까지 데려다 줬고.
준호는 서울로 돌아갔다.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 인균이 형이 부러움, 칭찬을 섞어 준호를 좋게 평가해줬다.
새삼스레 준호나 민석이.
이런 일이 있을때 선뜻 도와주려는 친구들이 고마워졌다.
나도 나중에 친구들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사람과 사람들 -
준호 보내고 계속 일 도와드리면서 생각한 거라면.
사람과 사람이라는게 쉬우면서도 어렵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세상이 넓으면서도 좁다는걸 알았다.
큰 이모부는 암으로 몇년째 고생하시면서도 먼길 오셨고.
영철이, 영길이 형. 외삼촌. 매형들도 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몇년전에 사고를 당하셔서 잘 걷지도 못하시는 이모부도 오셔서 위로해주셨다.
아버지의 삼성전자 입사 동기분들도 오셨고.
미광 아파트의 친목계 분들도 오셨다.
준호도 왔고. 이래저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우리 아버지 뿐 아니라 다른 어른들의 일가 친적, 동료, 친구분들이 오셨다.
어쩌면 형식적이 되어 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도.
굉장히 감동적인 광경이였던 것 같다.
슬픔과 기쁨은 나누는 거라고 했던가.
손님이 많이 올수록 힘들다곤 해도. 이렇게 사람끼리 엮인 것도 좋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도 열심히 했다.
- 돈 -
새벽엔 천균이형, 은경이 누나와 부조금을 정리했다.
큰 고모부의 말씀에 따르면 이렇게 돈을 계산하는게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는게 아니라.
"관계"를 돈독히 함과 동시에 "빚"지는 거라고 하셨다.
또 다음에 상대방의 기쁘거나 슬픈 일은 가서 도와줘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일이 기록해서 챙겨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의외로 돈은 굉장히 많았다. ㄱ-
1억에 가까운 돈이 현금이니 꽤 무지막지 한 감이 있었다.
돈 정리하는데 머리가 핑핑 돌았다.
결과적으로 총 액수가 한번에 맞았기 때문에 새벽 3시쯤에 작업이 끝났다.
안 맞았더라면.... 상상하기도 싫다.
덧붙여 큰 고모는 빨리 주무시고 싶어하셨지만.
나나 천균이형, 은경이 누나가 한자를 잘 몰랐기 때문에.
우리와 더불어 밤을 새셔야 했다.
그렇게 바쁘던 둘째날 밤이 저물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