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다 쓰러져가는 보금자리 ~스물라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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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기의 어떤 기능에 대해 -


 다시 찾아보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뭣 때문에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굉장히 오랜기간 방치해두다가, 한두번씩 기분의 끝을 달릴 때 몇번 다시 쓴 적은 있지만.


 그래도 이번엔 비교적 오래(한달은 되지 않았나?) 다시 쓰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표한다.


 어릴 때처럼 매일, 시시콜콜히 쓰는건 도저히 무리무리... 일주일에 2~3일 정도 쓸 수 있다면 나름대로 선방한거라 믿는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1주일에 하루 몰아서 쓰는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릴 때의 섬세한 감성으론 아주 작은 사건들도 일기의 소재가 될 수 있었는데,


 이젠 대다수의 일에 시큰둥했는지. 아니면 그때보다 생활이 더 단조롭고 퍽퍽해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크게 쓸만한 화젯거리. 어떤 임팩트 있는 사건이 줄어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일상이 심심하구나.




 그래서 가끔 쓰는 일기는. 이토록 미미한 일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하다. 지금 쓰는 일기도 하루에 있었던 '어떤 일'이 아닌. 그냥 문득 떠오른 어떤 작은 일에 대한 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난 첫사랑 만큼은 대단한 사람이였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마저도 벌써 15년 전 일이고. 어떤 사람이였는지. 어떻게 생겼었는지. 어떤 온도였는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기억하는건 꽤나 단편적인 것 뿐이다. 


 물론 오래된 사람 치고는 그 사람의 느낌이 담긴 편지나 선물들이 제법 되서, 굳이 뒤져본다면 더 회상할 거리는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 그냥 단순히 하는 회상에서도 나의 첫사랑은 대단한 사람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작고, 통통하고. 못생긴 아가씨 a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내게 있어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군대에 있을 때 뜬금없이 편지가 왔었다.


 근래엔 연락한 적 한번 없었고. 주소를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편지가 와서 놀랐었다.


 편지엔 대학생이 된 자신의 생활. 새로운 남자친구에 대한 자랑 등. 참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가득했던 것 같다.


 그걸 아빠미소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부대 주소를 알게 된건 홈페이지 덕분이라고 한다.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굴리기 시작했던건 고1 때였지만. 지금의 홈페이지는 군대가기 전에 준호랑 작당(?)해서 만든 거다.


 주소가 한두번 바뀌긴 했지만 게시판 계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니...


 


 제보(?)에 따르면 내 번호는 외우기 쉬운 편이라고 한다.


 그 쉬운 번호를 난 한번도 바꾼 적이 없다. 홈페이지 주소도 딱 한번 바꿨었다.


 바꾼 직후 몇년간은 자동으로 리다이렉트되게 해 놨었으니, 안 바뀌었다면 안 바뀐거나 다름없다.


 그냥 난 그런걸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누군가 다시 찾았을 때. 그 자리에 늘 있는 사람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시 찾는 훈훈한 경우는 전혀 없었고. 내가 달라붙어서 다시 찾게 되어도 그 끝은 좋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성향 문제인지. 나는 늘 유지한다. 이제와선 바꾸기도 귀찮고.




 어쨋거나. 그 편지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을 땐, 홈페이지에 와서 일기를 보면. 뭐하고 사는지 알고 있어서 연락을 안하고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라는 이야기. 그땐 시시콜콜 맨날 일기 쓸 때였으니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결국 난 다시 연락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는데. 내가 셀프로 그걸 가로막고 있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다시 만나봐야 결국 배드엔딩이였을테니까. 오히려 그정도 절절함이 나중에 좋게 기억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다닐 땐, 그래도 개인 홈페이지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후 싸이월드가 유행했지만. 어찌됐건 싸이월드도 '홈페이지' 개념이여서 그때까진 먹고 살만했다.


 이제 sns가 기본이 된 지금. 이 홈페이지는 그냥 자기 만족을 위한 정말로 나만의 일기장이 되어 버렸다.


 솔직히 연애를 다시 한다고 해도. 홈페이지를 가르쳐줘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다.


 



 1년에 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홈페이지를 유지시켜주는 호스팅 업체에 감사하며.


 누군지 다 알지만 고정적인 조회수 세명하며.


 ...그래도 고맙다고 해야하나?

 




 못잊어서 찔찔대는게 아니라. 


 새로이 열중할 무엇인가. 누구인가가 없어서. 


 그저 옛일을 잊지 않기 위해 찌질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만나면 이별을 하고. 시간이 지나 무뎌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남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이 없다만.


 누구 한 사람이 완전히 털어낼 경우. 나도 같이 정리되는 시스템이면 참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난 그럼에도 좋은 기억만 쪼개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