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는 글쓴이의 감정과 기억에 따라
(평소보다) 다소 왜곡되어 있으며 편파적일 수 있음...
- 회식 -
오늘은 회식. 날씨도 선선하겠다.
오늘은 옻닭 먹으러 간다고 하니. 몸보신 좀 하고 얼른 집에가서
상록이한테 받은 올해의 선물, 프라모델 마무리 작업을 해야겠다 싶었다.
선물 받았을 당시에는 상록이가 3월 말에 내려온대서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는데(완성품을 보여주기 위해?!)
상록이가 예상보다 일찍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바람에 한동안 방치...해뒀다.
윙 바인더(날개) 하나만 더 만들면 되는데 왜 이렇게 손이 안가는지... ㄱ-
여튼.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회식엘 갔다.
술 마실 생각은 1%도 없었건만.
윤호 형님과 박부장이 열심히 달리는 바람에 분위기상 맞장구 치기로 했다.
일단 입에 대면 어차피 대리운전 해야되니깐 적당히 빼지않고 분위기를 맞춰가며 마셨다.
회식 분위기는 나름 괜찮았던 편으로, 적당히 술이 돌았고,
8시 즈음이 될 무렵. 슬슬 끝내자는 분위기가 일었다. 눈치껏 일어나서 계산을 했다.
대구에 사는 박부장이 제일 멀리 사니,
일단 박부장을 보내고 헤어지자고 암묵적으로 합의가 이뤄졌고 대리를 2대 불렀다.
문제는 이후. 술이 조금 얼큰하게 들어갔는지
박부장의 입이 조금 험해졌고, 나를 대구에 데려가서 밤새 데리고 노니 마니 하는 망언을 해댔다.
야속하게도 다른 사람들도 말리진 않고(..) 데리고 가라면서 부추기는 분위기.
그러던 중에 대구행 대리기사가 왔는데.
내가 대구행을 승낙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박부장이 탑승을 거절.
대리기사가 한참을 기다리게 됐다.
시간이 지난 뒤 구미행 대리기사들도 왔건만, 다른 직원들도 박부장의 고집 때문에 가지 못하고.
'내가 대구에 가지 않기 때문'에 전직원이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형상이 되어버렸다.
시간을 보니 약 8시. 대구에 가면 9시.
어찌어찌 불필요하게 움직여도 오늘 내로는 구미에 오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내가 졌음을 시인하고, 박부장 차에 올라타서 대구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사건사고의 시발점.
- 노래방 -
이래저래 북대구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괜찮았다.
약간 오바스럽다 싶긴 하지만 아직은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으니깐.
박부장의 집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근처 노래방엘 갔다.
당시의 박부장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 나한테 빠구리를 시켜준다나 어쨋다나.
빠구리란 말은 왠지 남자끼리 해도 거부감이 있다. 주위엔 저런 어휘 쓰는 사람이 없어서...
여튼 박부장이 단골이라는 노래방 입성.
준호한테 연락해서 미리 구미행 기차 시간표를 받아뒀다.
노래방 가기 전에 여차할 때를 대비해 박부장의 와이프 전화번호도 받아뒀다.
현재 시간은 약 9시. 박부장이 2시간이나 쏠 리는 없으니 10시에 끝나면 12시 전엔 구미 도착한다.
좋아. 완벽하다.
노래방은 그냥 그랬다.
요 반년 정도는 간 적 없지만. 그래도 김과장이 노래방 데리고 갈 땐 아가씨들이랑 놀았는데
아무래도 박부장 취향이라 그런가, 미시들이 들어와서 그냥 그랬다.
난 노래방에 가는걸 즐기진 않지만,
그나마 납득하는건 '젊고 예쁜 애들이랑 노는 것' 정도였는데.
젊고 이쁘지도 않은 아줌마들이 들어온다면 그냥 돈지랄 아닌가... 하는게 솔직한 생각.
여튼 평소와 같이(?) 욕도 좀 하고. 노래방 도우미한테 민폐도 끼치며 한시간 끝.
노래방 사장님이 들어와서 연장할거냐고 묻길래 내가 먼저 No라는 사인을 보냈다.
시계를 봤다.
이대로 집에 바래다주고 역에 가면 문제없다. 모든건 시나리오 대로다.
하지만 그가 누구였는가.
나를 대구까지 오게 한 그 사람이. 이리 쉽게 물러설 리가 없잖은가.
나는 그를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방 시간은 끝났는데, 연장도 하지 않고, 가려고도 하지 않아서 낭패...
시간은 흘러흘러 기차 시간이 아슬아슬해졌다.
마지막 필살기라는 생각에 박부장의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냅두고 가랜다.
너무 예상외의 대답에 놀랐다. 뭐. 이젠 별 수 없다.
그만 가겠다고 하니 화를 낸다. 귀에 거슬리는 욕설이 술기운에 흘러나온다.
화를 내는 과정에서. 테이블을 두드리는 과정에서 테이블 위에 있던 내 폰이 떨어졌다.
나도 숱하게 떨어뜨렸지만. 이번에는 뭔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액정이 모서리 부분부터 자동차 유리 깨진듯이 쩌억- 금이 갔다.
놀란 마음에 터치해봤더니 터치 기능은 다행히 크게 문제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머릿속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뭐라 욕을 하던 지껄이던 말던 무시하고 노래방을 나섰다.
나가려는 나를 노래방 사장이 잡았다.
계산하라고.
한숨을 쉬고 카드를 내밀었다. 되는 일이 없구나-.
그래도 이때까진 괜찮았다.
노래방 비는 돌려받으면 그만이고. 휴대폰도 수리비 받으면 되니깐.
적어도 이때는 마음 한켠에도 이정도 긍정적 마음이 있었다.
- Critical day -
택시를 타고 대구역으로 갔다. 다행히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민석이랑 전화해서 잡담을 했다.
술을 마셔셔일까. 자꾸 미안하다는 소리만 했던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왠지 민석이가 결혼한 뒤로 자꾸 작아만 지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참 미안하다.
기차에 올라탔다.
눈을 떴다. 익숙한 역에 들어서고 있다.
참 타이밍 좋게 눈을 떳다며 내렸다. 내려서 역사로 올라왔다.
이상하다. 익숙하긴 한데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시간이 궁금해져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없다. 휴대폰이 없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확 들었다.
익숙했던 이유는 별다를 거 없이 '익숙한 역'이기 때문이였다.
대전역이다. 예전에 기차로 통학할 때 졸다가 김천까지 간 적은 있지만 대전까지 온건 처음이다.
피곤했는지. 술을 마셔서 그런지. 여튼 오래 잠들었다.
게다가 휴대폰도 없다.
문득 박부장한테 수리비 받아내긴 글렀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그래도 이때까진 괜찮았다. 그래. 이때까진.
별 생각없이 매표소에 가서 구미행 기차표를 요구했다.
오늘은 없단다. 아침 5시는 되야 기차표가 있다고 한다. 도착 시간은 7시.
...늦다. 너무 늦다.
지갑을 열어 잔액을 확인했다. 여관에서 눈 붙이고 구미 가기에는 문제 없는 돈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집에서 생길 트러블이 신경쓰였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공중전화로 갔다.
휴대폰이 없는게 뼈아팠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동전도 없다.
결국 수신자 부담으로 민석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버스 시간을 물어봤지만 아쉽게도 심야버스도 없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택시 기사에게 가서 구미행 요금을 물어봤다.
95,000원이라고 한다. 비싸다. 게다가 그정도 돈은 없다.
재수없게도 현금 인출이 안되는 시간이다. 뭐. 돈도 별로 없긴 하지만.
잠시 한숨을 쉬었다.
그냥 외박이냐. 무리해서라도 돌아가느냐. 가치판단을 했다.
...집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다시 택시로 돌아갔다. 아까 그 택시는 없다.
요금을 물어보니 120,000원이라고 한다.
아까 다른 분은 95,000원이라고 하던데요? 하고 반문했더니 어떤 표를 보여준다.
장거리 운임요금 표... 구미는 120.000원이라고 적혀있다.
아까 그거 탈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여튼 돈을 찾아서 택시를 탔다.
톨비 별도. 구미 IC에서 우리집까지 별도. 택시비 12만원...
정말 큰돈이 앗 하는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계획에도 없던 지출. 휴대폰 분실. 오늘 실컷 들었던 무의미한 욕설.
집에오는 택시 안에서 온갖 감정이 회오리치다가 찌부러들었다.
최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