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 -
눈을 떴다. 새벽 한시.
11시가 조금 못 되어 잠들었으니 겨우 두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니 출발했냐고 묻는 메세지가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면야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해서 숙소 잡고 소주나 한잔 했겠지만.
혼자니까. 일찍 가봐야 아무 의미도 없어.
오히려 긴 밤 동안 외로울 것 같아 일찍 가는건 조금 겁이 났다.
조금 뒤척거리다가 다시 잠들기로 했다.
눈을 떴다. 새벽 세시.
지난주 내내 잔업했기에 뻗어버리면 어떻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제 시간에 일어났다.
부시시한 눈을 비비고 간단히 세수와 양치질을 했다.
아무리 날이 풀린다고 해도 새벽엔 추울테니 옷을 든든히 입었다.
시간 때울 휴대폰과 PSP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시간은 3시 30분.
한 새벽이라 사실상 고속도로를 독점한거나 다름없었다.
네비게이션을 확인하며 조심조심 갔다.
길은 막히지 않았지만 초행길이기도 하고. 어둡기도 했고...
가는 길에 배가 고파 휴계소에 들렸다.
즉석음식은 24시간 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당번제였나보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오늘 밤은 한식 식당만 영업한다고 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휴계소를 나섰다.
아무렴, 고속도로 여행은 우동에 충무김밥이란 말이야.
...라는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이상한 논리 때문에.
- 바다 -
구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경주의 감포. 포항 정도다.
내 주위에서 이 근방을 잘 알만한 사람은
경주 출신인 은영이, 포항에 산다던 보람이 - 팔랑팔랑 -정도 뿐이다.
물어보니 이것저것 대답해준다.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역시 포항이 나은 것 같아 포항을 목적지로 정했다.
포항 중에서도 구룡포 해수욕장으로 갔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얼마전에 계 친구들이랑 대게 먹으러 간 곳 바로 옆이였다.
정말로 바로 옆. 차타고 3분만 더 가니 구룡포 해수욕장이 있더라고.
조금 일찍 도착해서 일출까진 약 1시간 30분이 남아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PC방에서 시간이나 때울까...하다가 그냥 바다에서 시간 때우기로 했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 엘리오스 대륙으로 건너갈 필요 있나.
제법 든든히 입었는데도 새벽의 겨울 바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추웠다.
너무 추워서 시동은 끄지 못하고.
구석에 차를 세워놓은 채 챙겨온 휴대폰과 PSP로 시간을 때웠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등대 불빛 덕에 넘실거리는 파도는 어렴풋이 보였다.
아쉽게도 현대 과학력 부족인지, 내 기술 부족인지.
카메라에 담기는 바다풍경이 내가 보는 것과 달라서 조금 화가 났다.
- 일출 -
조금 오해가 있던 것은.
일출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날이 밝아질 줄 알았는데.
일출하기 30분 전부터는 이미 제법 밝아져서 낮이나 다름 없었다.
7시 즈음부터는 백사장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왜 계속 바다에 오려고 했을까.
서서히 하늘의 푸른 빛에 조금씩 붉은 빛이 머금어지기 시작했다.
저 끝에서 웬 눈부신 녀석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아. 해다.
뜬다.
이게 일출이구나...
신년 맞이 등으로 가족과 함께 일출보러 간 적은 있지만.
늘 붐벼서 여유롭게 본 적은 없었다.
정말 혼자서. 백사장 한가운데 앉아 느긋히 해가 뜨는걸 바라봤다.
의외로 성질 급한 녀석인지,
모습을 내밀고 채 10분이 되지 않아 하늘에 우뚝 떠버리더라.
참 밝았다.
- 에필로그 #1 -
해가 뜨고 난 뒤엔 한 10분 정도 앉아 있다가 바로 출발했다.
더이상의 용무는 없다! 라고 중얼중얼.
죽도시장에 들려 먹을거나 사먹을까. 고민했지만 혼자서는 가기 싫었다.
그리고 이미 시간도 제법 됐으니. 역시 우동과 충무김밥이 먹고 싶어서 바로 출발.
칠곡 휴계소에서 우동과 충무김밥을 사먹었다.
역시 이게 휴계소의 베이직한 메뉴라는 생각에 왠지 감동.
2주만에 처음 맛본 바깥세상 음식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ㅠ_ㅜ
아... 쓰면서도 또 먹고 싶네.
그렇게 돌아왔다.
- 에필로그 #2 -
저녁엔 카페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셨다.
커피 자체는 특별할 거 없다.
집에서 굉장히 멀-지만 그냥 추억돋는 셈치고 먼길 왔다.
추억드립 해 봐야.
사실 여기서 커피 마신 적도 없고 테이크아웃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 최고로 무모했던 시절이였던 것 같아서 인상 깊다.
그렇게 달려들어도 내 맘대로 되진 않더라만.
뭐. 이 역시 커피 한잔만 마시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차가운 커피의 쓴 맛이 아련했다.
다음엔 시럽을 더 넣어 마셔야겠다. 근데 그러면 살찌겠네...
- 에필로그 #3 -
바다를 보고 왔다고 한들. 내 현실이 바뀔건 없다.
다만 넓은 바다와 성질 급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니.
왠지 요 몇일간 외로웠던 것이, 생각했던 것이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결국 어떻게든 흘러가지 않을까.
저리 큰 바다가 철썩거리는데. 작은 물한방을이 개겨봐야 뭘 하겠어.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은거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미뤄두고.
사회생활하며. 사랑하면 사랑하고. 안고 싶으면 안고.
그냥 여유만은 잃지 말자고. 초조해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성질급한 녀석. 매일매일 뜰텐데.
또 답답해질 때 보러 가면 되지 뭐.
역시 다녀오길 잘 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