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 셋째날 -문경 쌍용계곡 -
아침에 눈을 뜨니 오늘도 참 덥겠구나 싶었다.
어제 막걸리를 마셔서 아침에 머리가 좀 아프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피곤해서 졸린 것이였던 듯. 숙취는 없었다.
하긴. 막걸리 한병에 숙취가 오면 곤란할 것 같기도 하긴 하다만.
일어나니 어머니께서 아침을 차리고 계셨다.
'휴가인데 뭐하러 귀찮게 아침을 하고 그러세요. 휴계소에서 우동이나 먹으면 되지' 하고 아침인사를 건넸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무슨 소리야! 아침은 밥이지!'하고 끼어드셨다.
이에 어머니께서는 '원균이 마누라는 편하겠네. 저런 마인드 얼마나 좋아!'하면서 아버지를 흘겨 보셨다.
아아. 평화로운 아침이로군.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다같이 집을 나섰다.
내가 어릴 때 휴가를 갈 때면. 텐트에 코펠에 온갖 먹을것을 한가득 싸안고 집을 나섰다.
거기다 갈아입을 옷까지 해서 늘 짐이 한가득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점차 휴가때 들고 가는 짐이 줄기 시작.
지금은 사실상 몸만 간다.
실제로 오늘도 다같이 반팔에 반바지 입고, 슬리퍼를 신은채 다 같이 차에 올라탔을 뿐.
따로 챙겨온 것이라곤 작은 아이스 박스에 과일 몇개, 음료수 두개, 과자 한봉지 뿐이였다.
텐트는 민박이나 모텔 잡으면 되고, 코펠이나 식기, 음식등은 그냥 현지 조달.
휴가의 기분을 즐기는 것과 노는 것 까진 좋지만 아마 젊을 때만큼의 부지런함은 이제 나오지 않으신가보다.
뭐. 그래도 아직까지 가족끼리 휴가 가는건 좋은 것 같다.
결혼하면 내 마누라는 부모님과 같이 휴가 가려 하려나. 이왕이면 같이 가는데 찬성해줬음 좋겠다.
길안내는 네비게이션한테 맡겨놓고 룰루랄라 갔다.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하고. 서로 디스도 해 가면서. ㅋㅋ
부모님이랑 동생을 모시고 가기에 평소보다는 좀 조신히 운전했는데, 어머니께서 안전운전 한다고 칭찬해주셨다.
조금 찔리는 구석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칭찬 받는건 좋은 일이지. 아무렴.
돌이켜보면 나 처음에 모닝 운전할 때만 해도 내가 운전하는 차는 불안하다시면서 손잡이를 꼭 잡고 타셨는데.
이젠 그냥 유유자적히 타신다.
운전석에 나. 조수석에 상록이. 뒷자석에 부모님이 앉으셨는데.
내 차로 가는게 처음이니 이렇게 앉는 것도 처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내가 운전해서 아버지 좀 편하게 해드릴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제부터라도 하면 되지.
쌍용 계곡까지는 대략 한시간 반정도 걸린 것 같다.
제법 유명한 계곡인지 계곡 크기도 컸고, 사람도 엄청 많았다. 적당히 주차를 하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휘휘 둘러보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폈다. 가져온 포도를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잠시 계곡 물어 들어가보니 물이 굉장히 차가웠다.
어차피 갈아입을 옷도 없으니 물놀이는 무리지만. 아직은 물놀이하기엔 차가운 듯 싶었다. 감기 걸릴 것 같아.
하긴 그럼에도 저 멀리엔 물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대학생들이 있긴 하더라만.
계곡은 제법 괜찮았지만, 아버지의 호언장담과 달리 근처에는 뭘 사먹을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하다못해 치킨을 시켜먹을 수도 없었다. 왜냐면 번호를 모르니까.
포도와 과자를 먹으며 어머니께서는 '이럴 줄 알았다'면서 투덜투덜 대셨고, 아버지도 난처한 모습을 보이셨다.
계곡에서 산바람을 쐬며 소주한잔 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그게 이리 힘들줄이야.
잠시 멍하니 앉아 있자니 다른 텐트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솔 풍겨왔다. 계곡에서 맡는 삼겹살 냄새는 어찌 이리도 달콤한고.
결국 우리 가족은 '배고프니까'란 핑계로 계곡에 자리를 잡은지 30분만에 이탈했다.
상록이가 휴대폰으로 문경의 유명한 소고기집을 검색했고. 거기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생각보다 멀었지만 결국 네비의 힘으로 도착.
정말 유명한 집인지 식당도 엄청 컸고, 사람도 엄청 많았다. 그리고 가격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맛 없으면 실컷 디스하려 했지만. 일단 비싼만큼 맛도 있었기 때문에 군말않고 먹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드시고 했던 소주를 소고기와 함께 드셨고, 늘 술만 나오면 튕기던 상록이도 오늘따라 넙죽넙죽 잘 마셨다.
어머니도 가끔 드시고... 다만. 운전수인 나는 물을 소주잔에 따라 건배만 같이 했다. 히잉. 소주 맛있어 보여.
그리고 사이좋게 귀가해서 푹 쉬었다.
사실 집에서 출발해서 계곡을 보고 밥 먹고 귀가하기 까지 채 6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역대 최단 휴가였지만.
그래도 가족들끼리는 서로 액기스만 즐겼다고 자평하며 집에서 뒹굴거렸다.
아아. 이제 휴가도 끝이구나.
그건 그렇고. 문경도 한번쯤 여유롭게 놀러가기에 나쁘지 않은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연인이 생기면 사이좋게 계곡 놀러갔다가 소고기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물론 총알은 든든히 준비해야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