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다 쓰러져가는 보금자리 ~스물라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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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


 휴가가 끝났다. 오늘까지 휴가인 영우를 제외하고 다들 간만에 만났다.


 적당히 어떻게 휴가를 지냈는지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늘 그렇듯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주에 천안으로 남품 가셨던 사장님. 


 그날 협력업체와의 회의도 있었다는데. 삼성에서 지금까지 납품한 메이드 테크의 휴대폰 검사장비를 50라인 정도 더 증설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납품된 것만 해도 120라인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제법 크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인가보다.


 하긴. 삼성 휴대폰은 전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을테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메이트 테크는 작년에 생긴 신생 회사인데, 그래도 사장이 제법 영업수완이 있나보다. 창사 1년만에 저런 큰 프로젝트를 다 맡아서 하고.


 뭐. 요즘같은 불경기엔 우리한테도 일이 생기니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아직 발주는 나지 않았지만 50라인 역시 적은 양은 아니기 때문에, 수량이 많은 제품들은 미리 가공해 두기로 했다.


 잘은 몰라도 아마 메이트 테크 설계자, 구매쪽이랑 어느정도 이야기가 됐으리라.




 한번 가공했던 제품이라 프로그램도 다 있고 해서. 별 생각없이 여유롭게 셋팅, 가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1200개나 되는데 시간을 좀 줄일수는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가공 단가는 결정되어 있으니, 가공 시간이 짧아질 수록 우리한테 생기는 이윤이 크니까 말이야.


 누구 말대로 내가 사장아들이라 드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순수히 작업자로서도 얼마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차피 양산품이라 작업은 기계가 다 하고. 시간도 많겠다.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내가 짰던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조금 낯설긴 했지만 조심조심 여기저기 고쳤다.


 프로그램상에서는 기존보다 대략 1분정도 타임이 줄었다. 제품이 1200개니까 1200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


 기계를 멈추고 다시 프로그램을 적용, 필요한 공구를 넣어 가공을 해 봤다.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부분은 빠르게 고치고. 너무 빨라서 기계의 부하가 심한 곳은 낮추며 계속 고쳐나갔다.


 덕분에 한시간 정도는 제대로 된 작업을 하지 못했지만, 적용 시키고 나니 기존보다 1분이상 타임이 줄어서 혼자 뿌듯해 했다.


 야아. 왠지 조금 발전한 느낌이 들어서 신나는구나.






 - A급과 필살기 -


 이 업계에서는 일을 잘 하는 사람. 그러니까 기술력 있는 사람을 흔히 'A급'이라고 부르곤 한다.


 A급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스스로 A급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참 많다. 다만 남들이 보기에도 A급인지는 미묘한 문제.


 나도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언젠가 A급이 되고 싶다고.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을만큼 기술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덧 3년. 그런 감정이나 고양심은 많이 흩어졌고. 그저 관심사는 납기를 맞출 수 있나 없나 하는 정도의 문제 뿐이다.


 기술이 전혀 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3년이란 경험이 있었으니까.


 


 다만 소프트웨어 적인 부분은 늘었을지언정, 


 몸으로 직접하는 것들은 여전히 별다른 발전이 없는 초보 수준이다.


 이를테면 손으로 탭을 낸다거나, 공구를 연삭해서 원하는 모양으로 갈아낸다던가 하는 것은 전혀 못한다.


 사실 못해도 회사 생활하는데는 지장 없지만, 반대로 할 수 있어서 나쁠 것은 전혀 없음에도. 기본적으로 몸이 둔해서인지 잘 안된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게 뚜렷한 타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뭐. 다행히고 기본적으로 내가 다루는 장비는 자동화 장비, 소프트웨어 적인게 주가 되다보니 별로 티가 나진 않는다는 것.




 처음 입사했을 때는 3D 가공에 관심이 있어서 주말에 혼자 깎아보곤 했다.


 머지 않아서는 면판이나 지그 등의 가공 방법에 흥미를 가졌고.

 

 얼마전엔 2D가공과 3D가공을 적당히 동시에 적용시켜서 프로그램 작성하는데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그냥 내 지식이고 자기 만족일 뿐, 실제 업무에 적용할 일은 없는 특수한 지식일 뿐.


 처음엔 왠지 이런 것들도 필살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익혀두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필살기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그마저도 쓸 일이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 듯 하다.




 요 근래는 같은 제품이라도 양산일때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가공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도 실제로는 단품은 하던대로 가공하고 있고(장비나 공구를 혹사할 이유가 없다) 기껏해야 손대는건 양산품목 정도지만. 


 막상 해서 빨리빨리 나오면 신나고 좋더라.


 물론 일 빨리 끝내봐야 다른 사람이 시키는거 이어받을 뿐이지만. 이것도 결국 그냥 자기만족.




 다행히 일은 적성에 어느정도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흥미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까. 에 관해서는 별다른 자신이 없다.


 솔직히 업계 자체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고. 마주치는 사람들도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고. 몸에도 그다지 좋지 않고.


 주위에서 누가 한다고 하면 말릴 것 같은게 이쪽 분야니까.




 뭐. 그래도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해야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