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 -
오늘은 준호의 시험일이였다.
신비주의인듯 아닌듯한 준호의 시험일정도 어물쩡 오늘이 끝이다.
고작 편입 시험에도 치를 떨었던 나는 졸업할 즈음에도 공무원 시험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뭔가 몰두해서 줄창 공부할만한 근성과 정신력이 내겐 없었다는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입이라는 작은 경쟁에서도 이리저리 치이던 나는 경쟁이란데 회의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일찌감치 패배자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목표를 갖고 계속 준비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다만 모두가 그 결과를 쟁취하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뿐.
패배의식에 쩔어있던 그 시절을 되새김질해 보면, 저런건 내겐 너무 힘든 일..
-점을 보았다 -
시험을 마친 준호와 퇴근한 나랑 민석이가 만났다.
내가 점을 보자고 한동안 바득바득 우겼었기 때문에 만나서의 첫 일정은 당연히 점.
용하다는 점집을 나름 알아보긴 했지만 왠지 굿하라고 권유할 것 같아서 대충 철학관으로 타협봤다.
가기로 한 곳은 신평의 한 철학관.
사주와 궁합 등을 보고 나니 느낀건.. '저거 의외로 말빨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
어차피 정답이란게 있는게 아니니까 대충 느낌있게 쏼라쏼라 하면 듣는 사람이 끼워맞추면서 듣지 않을까?
어쨌거나 생각과는 조금 달랐지만 꽤 재밌었다.
맞는 것 같은 것도 있었고. 아닌 것 같은 것도 있었고.
일기를 나중에 쓰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다른 데랑 비교하니 안 정확해! 사기야!' 란
의견도 있지만(ㅋㅋ) 그래도 한번쯤 재미로는 볼만한듯.
일단 일기를 쓰기 위해(!)녹취를 해놓긴 했는데,
들으면서 일기를 쓰려고 하니 한시간 가까이 다시 들어야 해서 엄두가 안난다(..).
그래서 내것만 대충 기억나는 대로 쓰기로 했다. 귀차니즘이 최고.
나는 사자랜다.
큰 일은 잘 하지만 자잘한 일은 못한댄다.
머리는 좋지만 공부엔 딱히 관심이 없었고, 없댄다.
사업은 장사같이 두루뭉술한거 말고 전문적인걸 하면 좋댄다.
동업은 절대 금지.
등 뒤에 귀신이 붙어다니니 술 마시면 꼭 대리하란다.
말년에 처덕을 좀 본다나 어쨌다나.
곱슬머리 여자는 절대 만나면 안되고, 한두살 연상, 혹은 6~7살 어린 여자를 만나야 한댄다.
궁합을 봤는데. 봉황이랜다.
사자에게 피닉스는 넘사벽이라서 사자가 뭘 해도 만족을 못한다나.
사자가 먹이를 어찌 잡는지는 관심이 없고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 결과마저 성에 안찬댄다.
봉황은 너무 뛰어나서 재주가 집 밖으로 새어나간댄다.
그래서 내가 불안해한다나 어쨌다나.
초기에 힘들어도 일단 살면 어찌저찌 살긴 하는데, 생활비 관리는 내가 해야 된단다.
뛰어난 봉황새라는데 공감하고.
사자와는 격이 다르다는데소 체념과 인정이 반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황새 데려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게 웃었다.
우리 엄마 아빠도 궁합 엄청 안 좋다던데. 잘 살고 계시잖아...라는 정신승리는 덤.
이 아저씨의 특징이라면. 나한테도, 준호한테도, 민석이한테도 뭔가 가차없이 디스를 막 해대더라는 것. ㅋㅋ
그래서 웃기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술 마시면 안된다는 등의 뻔한 소리도 반복해서 살짝 신뢰도가 떨어졌다.
참고로 준호랑 민석이는 제비랜다.
- 늙어서 소백산맥 먹으면 죽음 -
점을 보고 나선 민석이가 알아봐둔 봉곡의 닭집으로 갔다.
취준생일때 민석이랑 가끔 가던 푸닥거리는 망했는지 주인이 바뀌었는지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더라.
하긴 그것도 벌써 5년도 더 됐으니... 시간 참 엄청 빨리가네.
간만에 셋이 모여서 그런지 젊은 기분 내려고 객기를 좀 부렸다.
간만에 소백산맥을 먹기로 한 것.
소백산맥은 '소'주 + '백'세주 + '산'사춘 + '맥'주를 섞은 일종의 짬뽕 폭탄주다.
아쉽게도 백세주를 도통 구할 수가 없어서 매화수로 대체했다.
(뒤늦게 알았는데 백세주는 가짜 백수오 사건 때문에 전량 회수 됐다고 한다)
일단 맥주 1750에 소주 한병, 매화수 한병, 산사춘 한병을 섞고보니..
왠지 좀 닝닝한거 같아서 패기롭게 소주를 한병 더 부었는데. 그게 실수였다.
처음 한잔 마실 땐 목넘김이 참 좋았는데, 잔을 입에서 떼는 순간 목 아래로 알콜이 싸해지는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그래도 어찌어찌 하나 반은 먹고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개 다 마셨으면 그날 셋다 집에 못 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지, 민석이는 술짱이니 괜찮았을지도.
그리고 노래방 가서 한시간 노래 신나게 부르고 헤어졌다.
간만에 셋이 모여서 놀아서 재밌었다.
그러고보니 처음엔 술 마신다는 이유만으로도 디스 당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유해졌었구나.. 라는 생각에 피식 웃으며 잠들었다.
피곤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