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다 쓰러져가는 보금자리 ~스물라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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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 -


 꿈을 꿨다.


 요 근래 생각이 많이 나긴 했지만 딱히 가슴 아플 정도는 아니였고. 딱히 소식이 궁금한 것도 아니였다.


 그냥 가을이 왔나보다... 싶은 정도의 감정. 감각이였다.




 꿈은. 마치 패러럴 월드 속의 나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꿈이였다.


 아. 내가 저러고 있구나. 저기 있는 나는 이렇게도 하는구나.


 저기 있는 그녀석은 저런 반응을 보이는구나.


 마치 나와 그 사람의 일인데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의 꿈이였다.




 눈을 떳다.


 시계를 보니 약 4시... 너무 일찍 깼다. 다시 잠드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밖을 보니 아직 어둑어둑하다. 낮이 점점 짧아진다더니, 해가 뜨는 시간도 많이 늦어진 것 같다.


 아니. 여름이라도 아직 해가 뜰 시간은 아니지만...


 한 30분을 뒤척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조용하다. 


 비척비척 밖으로 나와 큰길까지 나와서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았다.


 아직 쌀쌀하다. 그래서일까. 커피는 차갑다. 따뜻한 200원짜리 커피 뽑아먹을걸... 하고 잠깐 후회했다.


 숨을 후- 내쉬니 연기인지 김인지 이래저래 흩어진다.


 가을이라서 그런걸까. 왜 뜬금없이 그런 꿈을 꿨을까. 마음도 복잡하다.




 그래. 다음주가 추석이기도 하고. 가을도 다가오니까.


 오늘은 퇴근하고 시내에 나가서 옷을 사자.


 안그래도 돼지가 되어버린 덕에 예전에 입던 옷 다시 입기도 그러니깐.


 기분 전환하자. 나답잖게 옷에도 돈을 써보자. 맨날 엘소드녀석한테만 좋은 옷 입힐 수는 없잖아? 


 이젠 친구랑 술 진탕 먹는 것도 힘들고. 앞으로도 더 힘들거고. 이렇게도 전환해보자.


 아무리 돼지라도 입으면 진주목걸이 같은 옷이 있지 않겠어?


 기분전환하는 거다.




 그리고 머지않아 날이 밝았다. 가을이구나-






 - 충동구매 -


 퇴근하고. 이런저런 볼일을 줄줄줄 본 뒤. 시내에 나갔다.


 요란한 옷을 사고 싶어서 EXR에 갔는데, 아쉽게도 딱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다. 음...


 별 수 없지. 다른 옷가게를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익숙하지 않다보니 매장 들락거리는 것도 꽤 어색하다.



 

 평소라면 비싸다며 그냥 지나쳤을 GUESS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고민하다 들어갔다. 티셔츠를 고른다.


 고르다보니 마음에 드는게 하나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사이즈가 있나 물어봤다.


 직원이 옷을 꺼내주고, 옷을 대 보니 아무래도 작은 것 같다.


 기분이 팍 상했다.


 직원이 웃으며 입으면 다를거라고 입으라고 권한다.


 입었는데 돼지같은 라인이 다 비쳐보이면 어쩌지. 고민했지만 갈아입었다.


 다행히 크게 티나진 않는다. 큰 사이즈도 있구나...




 나와서 바로 결제했다.


 티셔츠를 두장 샀는데 2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이 나왔다.


 기분 전환이니까. 옷은 마음에 든다. 이쁘네.


 하다못해 친구랑 술을 마셔도. 여자친구 선물로도. 게임에도. 프라모델에도 이렇게 써본 적이 없는데.


 (물론 데이트 할 때 쓴돈을 다 합치면 그정도 쓴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옷은 예쁘다.


 기분이 확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좋아. 좋다. 






 - 꿈과 현실 -


 우연과 필연. 많은 것들이 이래저래 겹쳐서 현실이 됐다.


 내가 한걸음 내딛지 않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한걸음도 내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꿈 생각이 났다.


 지금쯤 패러럴 월드 - 꿈 속의 나는 현실의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문득 리얼충이라고 반농담, 반부러움으로 부르는 민석이 생각이 났다.


 그래. 적어도 너한테는 이런 구질구질함은 없잖아.


 내가 통장에 돈이 얼마 있고, 내가 일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고. 내가 11강 무기를 갖고 있다 한들.


 난 너의 그 일상이 부러워.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나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겠지.


 정작 나는 좋은 점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한없이 가벼운 점에 대하여...




 칵테일을 시켰다.


 늘 먹는 독한 칵테일. 이후엔 블랙 러시안.


 간만에 마신다. 칵테일. 싸한 커피맛이 독하다. 저녁도 안 먹어서일까, 속이 쓰리다.


 살짝 알콜기운이 도는 느낌이 난다. 긴장이 풀릴 듯 하지만 정신을 다잡기로 했다. 그럴 때가 아니야-




 드물게도. 오늘은 내가 이야길 하기 보단. 많이 들었다.


 요 근래 1년간 있었던 일. 더 나아가 나와 함께 할 때 있었던 일들.


 너무 어처구니 없었달까. 놀라운 일 투성이였다.


 머잖아 곧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 잔소리 하지 말 것.


 나와 함께 하지 않을 때의 일은 내가 신경써야 할 일이 아니고. 나와 함께 할 때의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다.




 돌이켜보니.


 애초에 내가 말하지 못하게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었다.


 '빚은 없었으면 좋겠다'던가. '금오공대 다녀서 매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던가.


 내 딴엔 악의 없는 바램의 나열이였을텐데. 


 천천히 생각해보니. 그래, 늘 그런 소릴 해대는 내게 말하기 힘들었겠다 싶다.




 게다가 거창하고 대단한 일들이였지만. 


 실제로 헤어진 것 자체와는 아무관계없는. 그런 일들이였다.


 그런데 한숨이 났다.




 사람들이 내가 나쁜 놈이니 어쩌니 손가락질해도.


 난 정말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전혀 몰랐다.


 쓸데없는 일에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아둥바둥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동안 광대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물론 상대방은 그런 의도가 아니였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거다.


 

 그런데 웃음이 났다.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추억담만 이야기하고 헤어졌음 행복했을까.


 아니. 차라리 숨겨져 있던 진실을 아는 쪽이 나아. 몇 배 낫지. 그런데 마음이 복잡했다.


 잠깐 고민했다. 어떤 만화의 주인공처럼 자기희생 컴플렉스라도 있는걸까. 아니면 그냥 뼛속부터 호구인걸까.


 반사적으로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손을 내밀어야하나- 고민했다.


 누군가 속삭였다.


 ...내 손이 닿는 일이 아니야.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길 했다.


 사실 그간의 이별에 대한것들은. 물론 상대방이 날 엿먹였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무렇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 이야길 나눠보면. 상대방도 무엇인가엔 상처받았다 카더라.


 각자 자신만의 핑계로 포장해서 기억하고 있더라.


 게다가 내가 무작정 잘했다고 할 생각도, 자신도 없고.




 어떻게 끝났던 간에, 사실 난 좋았던 일을 더 기억하고.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뼛속부터 웃기게도 여자라는 생명체에 대한 불신도 차곡차곡 쌓여왔다.


 솔직히 나중엔 의처증 같은걸로 뉴스에 나오지는 않을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해봤던 적도 있다.


 누군가가 그런 불신따위 싹 엎어줄 정도로 날 사랑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적도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편으론. 그 사람에게 내가 특별했을거라던가. 특별할 거라는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은 이게 제일 큰 문제 아니였을까.


 물론 나랑 헤어지고 평생 나만을 그리워하고 살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였다. 애초에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의 회상거리에 나는 - 회상하지 않더라도 - 그래도 좋은 놈으로 남아 있길 바랬다.


 이런저런 일탈은. '나와 함께'여서 가능할거라고 멍청하게도 믿었다.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조금이라도 그 일탈의 폭이 줄어들지 않을까. 라고 믿기도 했다.



뭐. 물론 이별 후 다시 엮였던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니까. 


 실제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들을 계속 믿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




 처음에 헤어졌을 땐. 크게 실감을 하지 못했다.


 미친듯이 화가 나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고. 섭섭하지도 않았고.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젠 남이다.


 라고 덤덤히 느꼈을 뿐이였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실감이 났지만.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지금 느껴지는 상실감이랄까. 실망이랄까.


 나랑 헤어져서. 그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사랑해서. 오는 상실감 같은게 아니다.


 어찌보면 내가 느껴야 할 이유가 없는 감정을, 웃기게도 내게 느끼고 있다는게 아이러니.


 


 정말 반짝반짝 빛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누구한테도 손가락질 받지 않고 평안히. 평범하게 반짝이길 바랬는데.


 조금 더 억지를 부리자면 기억을 곱씹을 때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길 바랬는데. 그랬는데...


 나는, 마치 흔하디 흔하게 연결된 인터넷에 글자를 표현하는. 


 많고 많은 키보드의 키조각 하나같다.


 글자하나 완벽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단지 키 한 조각.


 수많은 뻔한 조각들 중 하나...




 내 일도 아닌데 왜 내가 이렇게 상실감을 느낄까.


 그 일의 당사자인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고.  


 워낙 전환이 빠른 사람이라 당장 30분만 지나도 다 잊을 이야긴데.


 아니. 이미 잊고 덤덤하게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데. 


 정작 왜 내가 오바하고 있는걸까.


 


 표현하진 못했지만 마음속이 요동쳤다.


 너무 어릴 때부터 봐 왔기 때문일까. 정말 난 아빠같은 기분으로. 그녀석을 딸처럼 생각했을까.


 목 아랫부분이 꿈틀댔다. 


 술을 몇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메스꺼움이 확 올라와서 토악질이 올라왔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 와중에도 어떻게하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 다시 만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 생각했다.

 

 위에도 썻었지. 그건 아니지. 바라지도 않을거고. 내밀 수도 없다.


 내 인생이 아니다. 내 삶이 아니다.


 그렇게 되뇌었다.






  - 또다시 긴 밤 -


 의외로 어머니는 내가 술마셨다는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다.


 집에 들어오니 첫 마디가 '술도 안 마시고 이 시간까지 뭐 했어 아들?'이였으니까.


 아는 동생 만나고 왔다고 짧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여자애 만나고 왔다는 말에 크게 기뻐하셨다.


 뭐. 친구 만났다고 거짓말 하기엔. 얄팍한 인간관계. 이젠 만날 친구도 없다는거 잘 아시니깐.


 어떤 관계니. 며느리 될 가능성도 있니. 하는 질문에는 그냥 웃어넘겼다.




 씻고서, 침대에 누웠다.


 오늘 밤은 굉장히 길었다. 몸이 끈적했다.


 어제 늦게자서 굉장히 피곤한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정말 내 인생이 불쌍해서 뒤늦게 눈물이 났다.






  - 에필로그 - 

 

 새삼 느낀 건. 난 참 답이 없다.


 늘 그렇듯. 억지로 끼워맞춰서 이해하려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이해한다고 한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들. 크게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왠지 또 나 혼자 삽질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다.




 새삼스레 느낀거라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죽을만큼 사랑하지도 않고. 그리워 미칠 것 같지는 않았다고 한들.


 적어도 그 몇달 동안은. 정말 데리고 살 생각이였구나. 나도 그땐 진지했구나.


 라는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 이건 수확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나름 수확거리지.






 언젠가 다음엔. 


 정말 기분좋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나 나누며. 


 아무렇지도 않게 술 한잔 할 수 있길.




 이 모든게 한때의 술안주가 될 수 있게.


 우리의 연애사가 아니라. 너의 작은 방황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