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 주제에 어딜 감히 -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중이였다.
어색함을 달래기 위함일 수도 있고, 별 생각없이 말하는 중이였을 수도 있다.
하여튼 그 화제는, 정말 느닷없이 흘러 나왔다.
'소개팅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진짜 별로였다'란다.
착하긴 진짜 착하고, 친구로 지낸다면 완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댄다.
심지어 집도 잘 산다고 한다.
얼핏 들어서는 그다지 마이너스 요소가 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성향을 어느정도 아는지라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가 어찌됐건 그냥 네 하트가 비트하지 않으면 뭐 의미 없지?'
상대방도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소개팅 이후 그 사람이 호감 표시를 계속해서 하는게 좀 부담스러웠나보다.
그리고 직후. 그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 뱉었다.
'그래도 170도 안되면서 90키로는 너무하잖아'
...음?
작은 목소리였지만 잘 들렸다.
나의 돼지 레이더가 민감하게 반응한게 아니였을까.
'그 사람이 뚱뚱했어?'
라고 물어본 순간, 마치 해일과도 같이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던 것은 그 사람이 돼지였기 때문이였구나.
왠지 어디선가 많이 본... 아니 겪은 것 같은 풍경이다.
찰나의 순간, 나도 내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열폭하는 와중에 그는 디스를 멈추지 않았다.
이내 마음을 다 잡았지만 디스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씨익 웃어보였다.
나를 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람은 그럴 악의를 품을 사람도 아니고, 그만큼 섬세한 사람도 아니다.
분명 나한테는 1g의 악의도 없을 것이 분명하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왠지 나를 디스하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들어, 순간 우울해졌다.
내가 밥을 사기로 해서 이동하는 중이였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비싼 돈을 들여 밥을 사야되나 진지하게 고민할정도로(웃음).
식사를 했다. 맛있었다.
친한 사이도 아니요, 또 만날지 아닐지 알 수도 없고.
아니... 뭐. 사실상 또 볼일이 있을까 싶다.
이 사람에겐 악의가 없을거고, 나를 좋은사람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으나.
아마 이 사람은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거란 기분이 들었다.
잠시 고민 끝에 아까 그 이야길 다시 꺼냈다.
'아까 그 소개팅 남자, 나는 왠지 좀 동정이 가네요'
'내가 돼지라서 그런지 그 사람에게 왠지 이입이 된달까... 안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마치 당신이 나를 디스하는 것 같았어요'
역시 저 사람에게는 악의가 없었다.
내 말에 그 사람은 정말로 화들짝 놀랐고. 이런저런 말도 위로와 변명을 했다.
그 사람은 나보다도 뚱뚱하댄다. 나 정도 까지는 괜찮대.
어찌보면 더 불쌍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당했(?)을 때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던지라, 무사히 들었다.
그래. 뭐. 사실은 그간 돼지라고 까이고 다니면서도, 직접 이렇게 이야길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그래. 돼지는 다들 이렇게 싫어하기 마련이지. 하면서.
평소의 수많은 사건사고와는 다르게.
나는 이 발언자(..)에게는 그다지 불만을 갖지 않고 있다.
밥도 기쁜 마음으로 샀다.
이 사람은 그냥 섬세함이 좀 부족할 뿐이고. 애초에 내게는 관심이 없다.
그냥 본인 내키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어쨋거나. 이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돼지 주제에 감히 인간을 넘보다가. 장렬히 까인 것이였던 것이다.
